카테고리 없음

대한민국에서 파업이란...?

사람이 댓글다는겁니다 ㅠㅠ 2022. 12. 9. 09:05
반응형

펌글)))
1.
한국 사회에서 파업 때마다 파업의 쟁점사안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이 있다. 바로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배가 부른 것 아니냐? 는 말을 사측은 물론이고, 언론과 정부까지 나서서 한결같이 하는데, 이번 화물 파업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기자회견에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화물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이 월임금 500만에서 600만원을 상회하는 수준이라며 처우 개선 관련 절박성이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일 여러 언론에서 보도되는 바를 살펴보면 실제 현장은 원희룡 장관의 말과는 많이 다르다.
화물 노동자들이 한 달 평균 1천3, 4백만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하지만, 순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유류비와 고속도로 통행료, 보험료 그리고 장거리 운행을 하다보면 타이어 교체비를 비롯한 차량 수리비도 일반차량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돈이 들어간다. 한달 매출이 1천5백만원이어도 기름값 1100만원, 차량 수리비 150만원, 보험료 … 이렇게 하나씩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은 최고로 벌어도 3백만원에서 4백만원 사이가 된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생업을 위해 큰 빚을 지고 마련할 수 밖에 없는 2, 3억대의 차량은 대부분 할부로 구입하게 되고, 매달 적지 않은 금액을 갚아나가야 한다. 기름값, 도로비, 차 수리비 빼고 거기에 차량 할부금까지 제하면 한달 100만원 가져가기 힘든 노동자들도 많다고 한다. 경력 10년, 20년차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하루 서너 시간 차 안에서 쪽잠을 자고, 집에는 1주일에 한번 겨우 들어가면서 하루 16시간, 20시간을 일해서 버는 돈이다.

왜 파업을 하려고 하는지 제대로 알고 중재에 나서야할 국토부 장관이 화물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체 책상위에 놓인 몇몇 서류에 적힌 액수만 보고 그들을 고소득자라고 칭한 것이라면 장관 스스로 무능하고 준비가 안 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화물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다 알고도 그렇게 말한 것이라면 그의 발언은 매우 정치적인 언론 플레이에 다름 아닌 것이 되는데, 어느 쪽이든 국민을 섬겨야할 공무원의 자세는 아니다.

2.
“안전운임제 이전에는 화주와 운송사가 운송료를 속이고 지급해도 한마디도 못할만큼 눈칫밥도 많이 먹었다. … 안전운임제가 되고 나서는 운송료 내역서도 나오고 운송사 이윤도 정해져 있다 보니 시장도 투명해졌다. 이후 1시간 수면시간이 늘고, 기름값이 운송료에 연동되다 보니 기름값 걱정도 덜 하게 됐다. …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숨구멍…“
20년차 시멘트 운송노동자의 말이다. *

안전운임제는 임금노동자의 최저임금과 같은 개념이다. 화물차 기사들이 낮은 임금 때문에 과로,과적.과속의 위험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2020년 1월 도입되어 시행되었다. 그전까지는 화주와 운수사업자들이 일방적으로 운임을 결정해 왔고, 그로 인해 화물기사들이 유류비, 부품비. 기타 비용등을 다 떠안으면서 과적, 과속 운행에 내몰렸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이 있은 이후 문재인 정부가 안전운임제를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시행된 것이 안전운임제이다.
3년간의 안전운임제 종료를 앞두고 화물 노동자들은 법제화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 6월 8일 간의 파업 후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논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

현재 운송업체와 정부는 화물 노동자들이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안전운임제는 직전 분기의 평균 유가가 리터덩 50원 이상 인상 또는 인하되는 경우 변동된 비용 만큼 다음 분기 안전운임에 반영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고유가 상황에서 효과는 더 커진다.” **
유가보조금을 폐지하고 안전운임제를 실시하면 표준운임제로 시장이 투명해지고, 운송업체가 자기가 지불해야하는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게 됨으로써 국민 세금이 낭비되지 않아도 되고, 화물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가 운송 업체의 입장에 서서 정책을 펼치는 게 아니라면 이런 합리적이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반대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지않는가.

3.
대통령실은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구상중이라고 밝히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영국 전 총리 대처의 노동개혁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대처는 영국인들의 자부심인 의료보험을 민영화하려고했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높은 실업률로 사회전체를 흔들리게 했던 사람, 취학 아동에게 무상으로 지급되던 우유를 유상으로 전환해서 ‘우유 도둑’ 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기 보다는 힘으로 눌러 진압했던 사람이었다.
반세기 전 그가 펼친 정책들로 영국이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은 박살났고, 대처의 정책으로 혜택을 본 건 부자들만이었고, 영국인들의 입에서는 이제 다시 예전의 영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한탄이 흘러나오게 되었다.
예전에 살던 도시에서 알게 된 영국 친구는 리버풀 출신이었다. 어쩌다 독일에 와 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있는 그가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버렸어. 예전의 영국이 아니야. 나같은 평범한 사람은 살기 힘들게 되었더라고 … “

사회는 없고 오직 개인만 있을 뿐이라던 대처의 말은, 인간이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논의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고등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정면에서 부인하는 말이다.
정부도 기업과 다를 바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사회는 없다”는 대처의 말과는 다른 의미이기를 바란다. “시장 이전에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필요를 정의해야 한다” ***는 한 경제학자의 말을 대통령에게 들려 드리고 싶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다. 기업의 존재 이유와 다른 점이다.

4.
BBC코리아의 보도영상을 보면 한 화물 노동자가 자신의 화물차 운전석 옆 상자에 들어있는 다리 연골약, 허리 디스크 진통제와 두통약, 칫솔을 BBC 코리아 기자에게 보여주다 운전석 뒤에 깔린 침낭을 가리키며 자조적인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귀족노조가 자는 침낭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 ****

노동자들을 향한 귀족노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기초수급자 아이가 돈가스를 먹는다고, 화장품을 산다고 항의하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귀족노조라는 말은, 노동자는 어느 선을 넘어 안락해지거나 행복해지면 안 된다는 사회의 압력이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 감히! 네가! 라는 말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길 때 비로소 우리의 인간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서로가 서로를 동등하게, 그럴 가치가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가?

* <20년차 시멘트 운송 노동자의 호소>, 매일노동뉴스, 12.8
**<과속.과적 운행 막고, 화물노동자 생계 유지위한 최소장치 ,한겨레 2022. 06. 14
*** 정태인
**** BBC 코리아


출처  : 김지혜님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