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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 일본 금융계를 뒤흔들었던 ‘버블 레이디(bubble lad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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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버블 시기에는 대중들이 금융 스타를 추앙하며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근래 몇몇이 떠오르네요.
 
이러한 사례로 과거 일본의 버블 시기에는 버블 레이디 오노우에 누이라는 금융 스타가 탄생했었다고 합니다. 책 중 그녀와 관련된 사실들이 재밌어서 옮겨 적어봅니다.
 
- 다음 -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89년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 일본 금융계를 뒤흔들었던 ‘버블 레이디(bubble lady)’입니다. 1930년대 너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오노우에 누이(尾上 縫)는 대도시인 오사카에서 술집 접대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유명 건설 회사인 다이와하우스(大和ハウス) 사장의 정부(情夫)가 되면서 그의 지원으로 고급 술집을 두 개나 운영하는 사장이 됐습니다.
 
그러다 일본이 한창 버블로 치닫던 1987년 단 한 번의 투자 성공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은행 창구 직원의 권유로 10억 엔, 우리 돈으로 1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채권에 투자했는데, 때마침 일본 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크게 낮추면서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값이 급등해 투자한 지 몇 달 만에 큰 이득을 본 것입니다.
 
짧은 기간 큰 수익을 본 오노우에 누이는 투자의 달콤하고 강력한 유혹에 사로잡혀 평생 온갖 궂은일을 하며 벌어온 전 재산을 모두 주식에 투자했고, 그것도 모자라 그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닥치는 대로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당시 일본은 역사상 유례가 없던 버블 시대를 겪고 있었던 만큼 주가는 날마다 치솟아 올랐고, 그렇게 치솟은 주식을 담보로 그녀는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오노우에 누이의 투자수익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일본 금융계의 일약 스타가 되었고, 그녀가 유명해질수록 은행들은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안달이 났습니다. 그 결과 투자금액이 점점 더 불어나면서 마침내 3조 엔, 우리 돈으로 30조 원에 이르는 돈을 빌려 모두 주식 투자에 쏟아 부었습니다. 개인 주식 투자 금액으로는 일본 역사상 최대 금액이었죠.
 
투자를 확대하면 할수록 빚더미가 점점 더 불어나는 위험한 투자였지만, 버블 경제 시대에는 어떤 주식을 사든 치솟아 올랐기 때문에 마치 그녀가 ‘미다스의 손(Midas touch)’이라도 가진 것 같은 환상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5 그리고 금융계 거물급 인사 중에서도 그녀를 금융 천재로 부르며 숭배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습니다.
 
황당한 것은 그녀가 투자할 종목을 선택하는 방식이 시장분석이나 기업분석은커녕 철저한 토속신앙을 따랐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술집에 모셔둔 두꺼비상에 절을 하며 다음엔 어떤 주식을 사야 할지 물은 다음, 즉흥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종목이 두꺼비가 점지한 종목이라고 믿고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투자 방법이었지만 당시에는 일본 증시의 거의 모든 종목이 오르던 버블 시대였기 때문에 그녀가 무슨 종목을 선택하든 모두 치솟아 올랐고 그녀의 예측이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그녀가 샀다는 소문이 퍼지면 따라 사는 사람들까지 생겨났기 때문에 그녀가 고른 주식의 주가는 더욱 치솟아 올랐습니다.
 
투자를 확대하면 할수록 빚더미가 점점 더 불어나는 위험한 투자였지만, 버블 경제 시대에는 어떤 주식을 사든 치솟아 올랐기 때문에 마치 그녀가 ‘미다스의 손(Midas touch)’이라도 가진 것 같은 환상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금융계 거물급 인사 중에서도 그녀를 금융 천재로 부르며 숭배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습니다.
 
황당한 것은 그녀가 투자할 종목을 선택하는 방식이 시장분석이나 기업분석은커녕 철저한 토속신앙을 따랐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술집에 모셔둔 두꺼비상에 절을 하며 다음엔 어떤 주식을 사야 할지 물은 다음, 즉흥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종목이 두꺼비가 점지한 종목이라고 믿고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투자 방법이었지만 당시에는 일본 증시의 거의 모든 종목이 오르던 버블 시대였기 때문에 그녀가 무슨 종목을 선택하든 모두 치솟아 올랐고 그녀의 예측이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그녀가 샀다는 소문이 퍼지면 따라 사는 사람들까지 생겨났기 때문에 그녀가 고른 주식의 주가는 더욱 치솟아 올랐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황당한 투자 방식을 알면서도 일본의 내로라하는 금융 회사들이 그녀에게 30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을 빌려줬다는 것인데요. 단순히 돈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심지어 니혼고교은행(日本興業銀行) 은행장 같은 거물급 인사들도 그녀의 유명한 ‘두꺼비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문턱이 닳도록 그녀의 술집을 드나들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흔들리고 주가가 연일 폭락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자신의 돈이 아닌 빚으로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에 투자손실이 불어나자 순식간에 무너졌고, 결국 그녀의 투자 신화는 4년 만에 파산으로 끝나 감옥까지 가게 됐습니다.
 
오노우에 누이가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그녀를 신봉해 거액의 자금을 빌려주었던 주요 은행과 증권사는 큰 손실을 보았고 파산한 금융 회사까지 나왔습니다. 대출을 결정한 경영진은 대부분 교체되거나 형사상 책임까지 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한때 부(富)의 상징이자 금융 스타로 불렸던 그녀는 일본 거품 경제의 붕괴를 상징하는 ‘버블 레이디’라는 오명까지 갖게 됐습니다.
 
<부의 시그널>, 출처 :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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