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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치인의 한 사진,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퍼포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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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어느 정치인의 한 사진,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퍼포먼스 >

1. 사진은 중요한 텍스트다. 특히 그 사진에 공인이 개입되어 있고, 공적 영역에서 유통될 때 그 한 장의 사진은 중요한 '사회정치적 텍스트'의 기능을 한다.  최근 SNS에 회자하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두 장의 사진을 한 장으로 만든 그 사진은, 한겨레 신문사의 L기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고 한다.

2. 한쪽에는 유럽 출장을 가는 현 법무부 장관의 사진이다. 하드커버의 두꺼운 영어 책을 그는 손에 들고서, 재킷을 걸쳤음에도 들고 있는 책 제목이 잘 보이도록 정교한 ‘연기’를 한다.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그렇게 두껍고 무거운 책을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한다면, 복잡한 출국 수속을 거쳐야 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캐리어 가방에 넣을 것이다. 또 다른 사진은 전 법무부 장관이 누구나 보아도 분명하게, 회의 하러 가면서 한 손에는 찻잔과 또 다른 손에는 폴더와 책을 함께 들고서 걸어가는 사진이다.  

3. L 기자는 두 장의 사진을 하나로 붙여 놓고서,  “닮은 두 사람”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기자”라는 직함 때문에 이 사진은 그 무게를 더 한다. 아무리 개인 계정에 올렸다고 해도, 그는 이미 사적인 한 개인이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L기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가 이 사진에 다른 제목을 붙였다면, 그 사진은 매우 다른 기능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붙인 “닮은 두 사람”이라는 제목은 현 법무부 장관의 ‘연기’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을 ‘부당’하다며, 오히려 그 ‘연기’를 마치 진정성 있는 것 마냥 비호하는 기능을 한다. 그 ‘비호’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L 기자는 전 법무부장관이 책을 들고 걸어가는 사진을 이용한다.

4. 그런데 이 사진의 두 사람이 진정 닮았는가. “닮은 두 사람”이라는 말은, 마치 ‘돼지도 다리가 네 개이고, 책상도 다리가 네 개다. 그러므로 돼지와 책상은 똑 같다”라는 주장과 참으로 동일하다. 현 장관도 책을 들고 있고, 전 장관도 책을 들고 있으니, 두 사람이 닮은 것 아니냐고 한다면, 그 책을 들고 있는 구체적인 정황이나 목적과 같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왜곡'한다. 기자의 중요한 역할인 '사실 전달'이 아니라, 오히려 '사실 왜곡'을 스스로 행하고 있다.

5. 그런데 L 기자가 정말 이 두 장의 사진을 가지고 두 사람이 닮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그 두 사진의 차이점에 대한 의도적 왜곡이 아니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자’의 주요 책무는 비판적 시각으로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예리하게 찾아내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사실과 연결되는 ‘특정한 정황 왜곡’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문제제기하는 것이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반쪽 사실 (책을 들었다)’을 가지고, 정황과 전혀 상관없이  ‘전체 사실 (닮았다)’의 주장을 하는 전형적인 현실 왜곡을, ‘기자’라는 직책의 책임성을 가진 사람이 공적 영역에서 주저 없이 하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6.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는 ‘제2의 신 (the Second God)’이라고 간주된다. 종교의 신보다도 이제는 ‘미디어’가 인간의 현실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의 미디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비판적 사유와 포괄적인 분석의 부재는, 한국 사회의 사회정치적 퇴보를 가져오는 파괴적 기능을 한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정치적 텍스트’로 기능하는 L 기자의 이 한 장의 사진, 그리고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이라는 중대한 책무를 수행해야 하는 한 정치인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드러내는 ‘연기’를 보면서, 암담한 착잡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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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제목만 있어서 소위 '원서'로 보이던 책이 한국에서 번역된 책의 표지를 벗긴 것이라고 한 페친께서 사진을 남기셨기에 사진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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