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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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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비트코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즈음이다. 원작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가명이다)는 비트코인의 백서를 2007년부터 쓰기 시작해, 2008년 10월쯤 암호학 전문가 그룹에게 이메일로 공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형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거짓말처럼 날아가고, 주식갤러리에서는 '파란 나라를 보았니' 돌림노래를 부르고, 지옥행 분위기를 파악한 세계 각국이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하는데 목을 매고 있던 시기다.

당시 금융시장은 거의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미국 정부는 신나게 돈을 찍어내 구제금융을 돌리고 있었다. 혼란을 뒤로하고 아무튼 비트코인 작업에 매진했던 사토시는 2009년 1월 첫 비트코인 블록을 채굴하고 거기에 기념이 될 만한 문구를 새겨 넣었다. <더타임스> 1월 3일자 기사 제목이었다. "영국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그가 비트코인이라는 작업에 확신이 생기기까지는 1달 정도가 필요했던 것 같다. 사토시는 그해 2월 11일에 자신이 자주 이용하던 P2P 파운데이션이라는 웹 포럼에 비트코인을 소개한다. 소개 문구 앞단이 매우 귀엽게 시작한다. "저는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오픈 소스 P2P 전자 현금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모든 것이 신뢰 대신 암호 증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중앙 서버나 신뢰할 수 있는 당사자가 없이 완전히 탈중앙화되어 있습니다."

사토시는 이 소개글에서 "전통적인 화폐의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중앙은행이 화폐 가치를 함부로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법정화폐 역사에는 그런 신뢰가 무너진 사례가 너무 많다"고 꼬집었다.

그러니까 결국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화폐를 만들고자 한 것이 비트코인의 시도였던 셈이다. 14년이 지난 지금의 결과를 보면 그 시도는 일단 성공했다고 하는 게 온당한 평가일 것 같다. 아이러니한 점은, 믿음이 필요 없는 화폐를 만들었더니 그걸 열렬히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버렸다는 것이다.

요즘 미국 은행이 무너지고 금융위기가 오네 마네 하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식자층 일각에서는 이 원인을 크립토(암호화폐) 진영과 비트코인에 돌리는 것 같다.

글쎄. 왜 14년 전에 비트코인이 나왔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사실 레거시 금융이 잘 했으면 나올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설사 나왔다 하더라도 별 반향이 없었을 것이다. 기존 금융이 얼마나 편리하고 든든한데 비트코인 같은 생소한 데이터 쪼가리를 쓰겠나. 그게 쓸모가 생긴 배경에는 분명히 금융의 '일못'이 있는 것이다.

세계 매크로 질서를 좌우하는 미 연방준비제도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해 금리를 너무 늦게 올렸다. 괜찮다 괜찮다 하더니 결국 물가가 괜찮지 않게 됐고, 물가 잡는다고 뒤늦게 급하게 금리를 올리다가 이제 은행이 터지기 시작했다. 제조업 지표들은 이미 부러졌고, 금융 불안까지 오면 경제는 바퀴 없이 활주로에 착륙할 판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반성을 하는 목소리는 뚜렷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놓고 크립토가 문제라니. 지금의 혼란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려는 사람 말고 누가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사소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비트코인은 설득하지 않는다. 사실 안 땡기면 꼭 안 사고 안 써도 된다. 애초부터 그거 꼭 좀 써주십사, 당신이 써야만 우리가 삽니다 컨셉으로 만든 화폐가 아니다. 그러니 크립토로의 변화가 마뜩치 않으면 그냥 기존 금융하는 분들이 잘, 기존 금융의 능력과 존재감을 증명하면 된다. 아 그럼 누가 복잡하고 어려운 크립토를 써. 각자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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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기닌과 오렌지

Better Call Saul 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드라마로 꼽히는 Breaking Bad의 스핀오프인데 Better Call Saul도 역시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주인공 Saul이 나쁜 짓을 거침 없이 하기 전 연인도 있던 시절 오렌지를 착즙하는 장면들이 몇 번 나온다. 그 후 연인도 떠나고 타락에 거리낌이 없어졌을 때는 오렌지 착즙 대신 아르기닌 영양제를 그것도 마사지 기계 위에서 챙기는 모습이 나온다.

물론 오렌지는 이 드라마에서 다양한 소재로 쓰인다. 특히 오렌지가 흩어지며 사람이 목이 꺾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영화 <대부>의 오마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줄거리 전개에 무관하게 착즙을 해먹던 삶과 영양제를 먹는 삶을 교차시켜 놓은 것은 타락하는 과정에서 변하는 삶의 양식을 보여주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일은 신선한 것을 골라 사와야하고 손질을 해야한다. 조금의 주스를 착즙하기 위해서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착즙해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착즙을 하고나면 착즙기도 세척해야한다. 하지만 영양제는 간편하다. 마사지 기계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칭과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마사지 기계 위에 몸을 올리는 것은 쉽고 간편하다.

쉽고 간편한 것을 좇는 삶 양식은 어떤 면에서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쉬운 돈, 쉬운 건강, 쉬운 합격. 모두 해야하는 일을 회피하고 꼼수에 중독 되도록 한다. 책임, 감사, 헌신은 잊고 권리와 쾌락에만 집중하게 한다. 그렇게 끊임 없이 껍데기만 칠하다가 한참을 지나서야 무엇을 잃었는지 알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요즘 ChatGPT를 사용하면서 인생에 간편함이 위험하게 초과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ChatGPT 쓰는 대신 몇 가지 간편함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영양제 대신에 과일을 먹고, 시간이 나면 요리를 하고, 아침에 일어났으면 이불을 개고,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 대신 길에 익숙해지고 대신 30분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고관절을 다친 이후 마사지를 꾸준히 받았는데 대신에 운동과 스트레칭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애플워치는 일반시계로 바꿔 운동 추적이나 시간 관리는 머리와 종이로 하기로 했다. 조금 더 움직이고 조금 더 불편하게 살면서 문명에 대한 감사함을 단련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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