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여러가지 생각을.하게만드는 좋은글이 많네요
이런 글을 계속해서 읽어야 지식이 쌓이고 알맞는 시장해석을 하게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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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를 설명하는 한가지 방법
“설명하는 것은 분류하는 것이다.”(To explain is to classify)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설명이 되려면 “분류”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단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분류하되, 동시에 그것의 종차(differentia)를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나오는 얘기라고 함)
(differentia: “a characteristic trait distinguishing a species from other species of the same genus”)
따라서 임일섭을 설명하려면 일단 분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임일섭은 남자(에 속한다), 임일섭은 안경쓴사람(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안되고, 그 종차를 밝혀야 한다. 이를테면 임일섭이 다른 남자와 구별되는 점, 다른 안경잡이들과 구별되는 점 등등.
여기서 드러나듯이, “분류하고 종차를 밝히는 것”은 일련의 위계(hierarchy) 속에서의 위치를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임일섭의 예를 들면, 임일섭은 포유류에 속한다고 분류한 이후, 다른 포유류와의 종차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외계인에게 임일섭을 설명할때는 이런 방식이 적절할 수 있지만, 주변의 지인들에게 임일섭을 설명하는 방식으로는 부적절하다. 임일섭이 사람(호모 사피엔스)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해야 의미있는 얘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화폐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설명의 목적이나 그 컨텍스트가 분명해질 필요가 있다.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화폐의 “본질”을 설명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의 분류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폐의 본질이란 다들 익숙한 내용이다. medium of exchange, store of value, unit of account 등. 예컨대 밀턴 프리드먼이 화폐의 본질을 설명한다고 하면서 오래전 어느 섬에서 사용한 크고 무거운 돌덩어리 얘기를 했다는데, 이는 돌덩어리를 화폐로 분류했을 뿐, 다른 화폐들과 비교한 돌덩어리의 ‘종차’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흡하다. 따라서 현대 화폐를 이해하는 데에도 별 도움이 안된다. 교환의 매개물… 등등의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그 섬의 돌덩어리와 지금의 화폐가 동일한 무엇으로 분류되는 것은 맞는데(즉 본질은 동일한데, 또는 동일한 유형에 속하는데), 이러한 설명방식에서는 그 돌덩어리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의 종차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화폐와 금융의 문외한에게 화폐라는 추상적 개념을 설명하려면, 돌덩어리 얘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화폐와 금융의 “외계인”에게 화폐를 설명하는 방식일 뿐,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현대 화폐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적절하다. 이는 마치, 현대의 자동차를 설명하겠다고 하면서, 그것을 운송수단으로 분류하고, “자동차는 수레/마차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기능을 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구경도 못해본 외계인에게 설명할때는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좋은 설명방식은 아니다. 현대 내연기관 자동차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수레/마차와 구별되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종차”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러면 현대 화폐의 종차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 화폐의 대부분은 시장(경제)에서 생산되고 유통된다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면, 현대의 통화(체제)는 시장경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엇 그러면 발권력을 독점한 중앙은행은 뭐냐고? 물론 법화(legal tender)의 발행을 한국은행이 독점하고 있는 건 맞(는)다. 근데 지금 얘기하는 화폐는 법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medium of exchange…. 등등 일련의 기능을 수행하는 지급수단(payment instrument)을 총칭한다. 그래서 과거의 조개껍질이나 돌멩이도 화폐라고 하는 것이다.
암튼 반복하면, 현대의 화폐, 즉 현대의 지급수단의 주요한 특징, 그 종차는, 그것이 시장경제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M1, M2 같은 통화량 지표들에서 은행 예금통화가 대부분이고 중앙은행의 본원통화는 극히 일부라는 건 바로 이 얘기다. 달리 표현하면, 전체 통화에서 중앙은행권의 비중은 극히 작고, 대부분을 민간화폐가 차지한다는 점이 현대 화폐체제의 특징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달리 표현하면, 현대의 숱한 거래들 중에서 현금거래의 비중은 극히 작다는 얘기도 된다. 물리적인 지폐/주화를 사용하는 현금거래는 대면거래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며, 심지어 대면거래에서도 현금거래가 마냥 편리한것은 아니다.
지급수단으로 사용되는 현대 화폐가 시장경제의 산물이라는 말은, 단지 시장경제의 발전(상업과 유통의 발전) 덕분에 화폐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화폐가 얼마나 공급될지를 기본적으로, 시장이 결정한다는 뜻이다. 이걸 공공화폐(public money)와 구별되는 민간화폐(private money)라고 부른다. 이러한 화폐의 공급량과 공급처는 (독재자건 성인군자건 간에) 권력자가 결정하지 않으며,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중앙은행이 결정하지도 않고, 시장에서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중앙은행이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이게 바로 현대 경제에서 통화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상업은행의 예금통화(bank money=private money)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은행의 예금통화 창조(신용창조)는 대출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대출이 시행되려면 대출에 대한 수요가 있어야 하고, 그 수요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을 거쳐 대출을 공급해야 한다. 대출에 대한 수요가 바로 가계및기업(화폐수요자)의 지급수단에 대한 수요이고, 그 수요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은 가계와 기업의 신용과 부실가능성에 대한 은행(화폐공급자)의 판단이다. 이러한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을 거쳐 대출이 공급되며, 이는 동시에 예금통화의 창출, 즉 화폐의 공급량이 결정되는 과정이다. (이는 “은행이 예금의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고, 그것을 대출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시각과 구분된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어쩌다 보니 역사적으로 민간은행이 지급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공급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기는 했지만, 이게 과연 바람직한 경로일까라는 질문. 과거에 현금이라는 지급수단의 공급을 정치권력이 주도했던 것처럼, 상업과 시장의 발달, 자본주의의 확산에 대응하여 정부가 적절한 비현금 거래수단을 개발했더라면, 이 중요한 화폐의 공급을 상업은행이 주도하는 지금의 상황과는 다른 모습도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
이 질문에 답하려면, 계획경제에 대비한 시장경제의 장점을 상기해보는 것이 적절하다. 중앙의 계획가(central planner)가 여러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량과 가격을 사전에 결정하는 계획경제와 달리, 시장경제에서는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장가격의 움직임이 적절한 정보를 전달하면서 자원의 생산과 분배를 달성한다. 화폐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사전에 필요한 화폐의 공급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적절한 화폐의 공급량이 조절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작동 방식이다. 가계와 기업의 화폐수요, 대출수요에 대한 은행의 판단과 평가를 거치면서 신용창조라는 과정을 통해 민간화폐가 공급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두고, 현대 경제에서 통화의 공급은 중앙집권적인 것이 아니라, 분권화(탈중앙화?!)된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것의 장점은 화폐공급이 탄력적으로 조절된다는 점이다. 계획경제에서의 상품생산과 달리 시장에서 경제주체들의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을 통해 화폐가 생산되고 공급된다. 이것이 탄력적 화폐공급의 진정한 의의다. 즉 금본위제처럼 금 보유량을 준거로 화폐발행을 통제하는 후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에 의해 화폐가 공급된다.
(잠깐 벗어나자면, 미 연준의 설립목적이 “탄력적인 화폐”(elastic currency)의 공급이라는 이유로 이건 중앙은행의 역할이라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연준의 역할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안정적 결제자산(stable settlement asset)의 탄력적 공급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준비금(reserve)의 공급을 지칭한다. 기실 최종대부자 역할이 당초 상업은행에 한정되었던 것도 중앙은행에 준비금을 보유하면서 지급결제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이 상업은행이었기 때문이다. 더이상의 자세한 얘기는 줄인다.)
이러한 시스템의 장점은 시장경제의 장점과 마찬가지다. 민간에 의한, 시장에 의한 화폐공급이기 때문에 계획경제보다 우월하다. 지급수단의 창조가 민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은, 금융자원의 배분이 민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런데, 시장경제는 분산된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달성한다고 하지만, 시장은 때로 실패하지 않는가? 맞다. 화폐 시장도 실패한다. 여기서 시장이 실패한다는 것은 화폐가 과잉공급 또는 과소공급된다는 얘기다. 어떤 이유로 화폐공급에 제약이 생기면, 화폐는 과소공급된다(디플레이션). 또다른 어떤 이유로 화폐가 과잉 공급되면, 화폐가치가 하락한다.(인플레이션)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민간화폐의 가치에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banking panic, aka 금융위기)도 가끔 있다.
특수한 부채계약으로서의 화폐가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가치가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민간부문은 무위험부채(risk-free debt)를 만들어낼수 없기 때문에, 은행이라는 사기업의 부채인 민간화폐는 본질적으로 취약하다(민간화폐의 내재적 불안정성). 그래서 지급결제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최종적인 결제는 중앙은행 준비금(법정화폐)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재의 지급결제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지만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지급준비금 만으로는 여전히 미흡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또다른 안전장치가 예금보험제도다. 이러한 안전장치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시장의 실패 가능성, 불안정을 이유로 화폐시장을 없애자는 발상은, 사실상 정치권력이 화폐발행을 독점했던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상업이 미발달했고, 시장경제가 미발달했던 시기에는 정치권력이 화폐발행을 독점했고, 이것이 상업과 시장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한계에 직면했음은 역사가 보여준다. 예컨대 17-18세기 조선 경제는 전황(돈가뭄=디플레)과 당백전(인플레) 등의 혼란을 겪었는데, 이는 정치권력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화폐의 공급이 민간의 화폐수요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화폐발행을 중앙권력이 독점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폐해 때문에 계획경제를 하자는 것과도 유사하다. 일찍이 1930년대 사회주의 계산논쟁에서 하이에크가 논파했듯이, 계획경제에 비교한 시장경제의 장점은 안정과 효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얼마나 생산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하는 과정이자 절차로서의 시장이 의미를 갖는다(market as a discovery procedure). 일반 재화뿐만 아니라 지급수단으로서의 화폐도 마찬가지다. 그 지급수단을 누구에게 얼마나 공급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사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플래너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은행과 경제주체들이 시행착오와 비효율을 감내하면서 돈을 빌리려 하고, 신용평가와 여신심사를 통해 돈을 빌려주고, 오판한 경우 책임을 지고… 이렇게 덜컹거리면서 돌아가는 것이 시장경제다.
이런 논의들이 무슨 함의를 가질까? 중앙은행과 예금보험제도 등 금융안전망의 역할과 중요성, 은행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한 그림자금융(비은행금융중개)의 취약성과 이에 대한 대응, 나아가 CBDC의 필요성을 둘러싼 논란, 스테이블코인 등에 대한 규제방안 등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준다. 각각은 모두 별도의 상세한 논의가 필요한 영역이므로 나중으로 미룬다. 다만, 아무 얘기도 안하면 아쉬우니까, 일단 하나만 지적해두자. 그것은 바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큰 착각을 했다는 점이다. 화폐는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발행하는 것도 아니고, 민간은행이 내키는대로 찍어내는 것도 아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시장은 실패한다. 그러나 교정장치와 안전장치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정보문제(information problem) 때문에 시장의 비효율성을 사전에 극복하는 대안은 없다. 전술했듯이, 사토시의 착각은 계획경제론자들의 착각과 유사하다. 시장의 비효율성과 불안정성을 이유로 화폐공급을 사전에 고정된 알고리즘에 종속시키는 방식으로 좋은 화폐가 만들어질 수 없다. 단지 투기적 수요에 의한 가격변동성이 문제가 아니다. 비트코인에는 화폐수요의 변화에 대응하여 화폐공급량을 조절하는 메커니즘 자체가 없다. 지금까지 화폐의 역사는 이 메커니즘을 발전시켜 온 역사인데,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다시 컴퓨터 코드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셈이다. 시스템의 작동을 통제하는 것이 권력자인가 컴퓨터코드인가의 차이만 있을 뿐, 민간의 자율적 상호작용에 의한 시스템의 유지와 재생산을 불신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전체주의와 공통분모가 있다. 전체주의가 독재자에게 부여한 역할을, 비트코인은 컴퓨터 코드에 부여했을 뿐이다. 그래서 전자는 정치적 권위주의로 흐르지만, 후자는 무정부주의로 흐른다.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라는 문제점은 양자 모두에서 마찬가지다.
출처 임일섭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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