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전쟁을 피하려면······
러시아의 핵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푸틴은 “만약 영토보전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지체없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러시아와 국민을 보호할 것”이며, 이것은 ‘허세(bluff)’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돈바스의 전략적 요충지인 리만이 함락하자, 체첸군의 수장인 람잔 카디로프는 저위력 핵무기 사용을 요구했다. 그 이전에 메드베데프는 핵무기 사용을 공공연히 꺼냈다.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미국의 대응 매뉴얼은 아직 공개되고 있지 않다. 전술핵에 대해 같이 핵으로 대응하기보다 재래식 전력을 통해 우크라이나 내 모든 러시아군과 러시아 흑해함대를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정도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푸틴의 핵 카드에 대해 먼저 패를 보여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지금은 가능한 최대의 보복을 하겠다는 정도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의 핵전쟁 위협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러시아를 우크라이나에서 쫓아내는 것이다. 여기는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뿐만 아니라 크름반도까지 포함한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동부 지역을 회복하고 압도적인 전력으로 크름반도를 수복한다면 푸틴은 핵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푸틴이 핵 버튼을 눌러도 그의 측근과 군부가 거부할 힘은 핵으로 어떤 상황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에 직면하는 것이다. 핵 버튼을 누르게 되면 동부와 크름반도의 영토 상실은 물론 푸틴과 그 친구들, 나아가 러시아 본토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핵 버튼을 누르는 미친 짓거리를 할 수가 없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하고도 권좌를 유지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 야당은 의미 없고 저항하는 국민은 이미 국외로 탈출했거나 전쟁터에 대포 밥이 된 상태다. 러시아는 철저하게 외부와 담을 쌓고 ‘하얀 북한’이 되면 푸틴의 영구 집권도 가능하다. 푸틴과 그 친구들에겐 이런 대안이 있으므로 쉽사리 핵 버튼을 눌러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만약 우크라이나와 서구가 푸틴의 핵 위협에 굴복하여 전쟁을 늦추는구나 크름반도를 협상 제물로 올리는 순간 우리는 내년, 아니 앞으로 계속되는 핵 위협의 공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핵이란 사용하기 직전에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푸틴이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핵 카드로 크름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보장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푸틴은 총동원령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동원령 이전에 크름반도가 우크라이나 손에 들어간다면 핵 카드는 무용지물이 된다.
핵전쟁을 피하려면 우크라이나군이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 다행히 지금 우크라이나군은 놀랄만한 속도로 전격전을 진행 중이다. 반면 러시아군은 이미 사기가 떨어져 곳곳에서 도망가기가 급급하다.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을 탈환하면 그 속도 그대로 크름반도로 내려가야 한다. 전쟁의 고착화를 피하는 것이 핵전쟁의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