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면 뉴스를 크게 장식한 크름대교 폭파 사건이 발생한 지 만 하루가 지났으니 다시 짚어보고자 함.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 7장 첨부)
현지 시각 10/8(토) 오전 6시경에 발생.
폭발이 일어나고 얼마 후 SNS에 사고 현장을 담은 사진이 올라옴.(사진1) 다리 상판이 끊어지고 불타는 열차가 있어서 처음에는 다들 합성인가 그랬음.
크름대교의 구조가 좀 독특하기 때문에 다리 형태를 모르고 보면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가 안 됨. 크름대교는 2차선 양방향 차량 교량과 복선 철로 교량이 함께 놓인 형태.
사진1을 자세히 보면 다리가 위.아래로 겹쳐 있고 아랫부분이 끊어진 것을 알 수 있음.
아래 부분이 양방향 차량 교량. 폭발로 그중 한쪽의 상판이 바다로 추락했고 끊어짐. 러시아 방송은 차량 통행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하는데 가능이야 하겠지. 이것은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은 끊어졌지만 하행선은 통행이 가능하다는 식임. 사진2가 더 확실하게 보여줌.
처음 보도에서는 차량 교량을 지나가던 유류 트럭이 '사고로' 폭발했고 하필 그때 그 위로 지나가던 유조 열차가 그 여파로 터졌다고 했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함.
이제 크름대교가 러시아와 푸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봐야 함.
사진3은 크름대교의 위치.(빨간색으로 표시)
러시아는 2014년에 우크라이나의 크름반도를 병합한 후, 2016년부터 본토 노보르시스크 지방을 연결하는 대교를 건설하기 시작.
대교가 놓인 곳은 케르치 해협인데 폭이 가장 좁은 곳은 불과 4km 밖에 안 됨(가장 넓은 곳은 16km). 그러니 예전부터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가 있었음.
사진3에서 보면 다리로 표시한 부분 위쪽 넓은 곳이 아조우해. 바다를 통해 해상 운송을 하는 것보다 당연히 육로 이송이 시간, 돈 절약.
영국은 1870년대에 철교를 건설해서 인도와 유럽을 연결 시도.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효용성이 떨어져 취소. 러시아도 1900년대 초부터 다리를 놓으려고 했으나 러일전쟁과 러시아 혁명으로 무산됨.
심지어 2차 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이 우크라이나 지역 점령 후 러시아 캅카스 유전지대 장악을 위해 교량 건설 시도. 소련군의 반격으로 공정률 30% 상태에서 철수. 전후 소련은 나머지를 이어서 건설하려고 했으나 기술력과 재원 부족으로 포기.
소련 시기뿐만 아니라 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뒤에도 계속 교량 건설 논의가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비용 때문에 실현되지 못함.
제정러시아 때부터 100년 넘게 이루지 못한 숙원 사업인데 마침내 푸틴이 대교를 건설함. 완성된 크름대교의 모습은 정말 간지났음.(사진4)
2014년 크름반도 병합 후, 푸틴은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국력을 총동원해서 크름대교를 만들도록 함.
총사업비 36억 달러(현 환율로 5.13조 원)가 들어간 대공사였음. 차량교는 2018년에 개통되었는데 이때 푸틴은 직접 트럭을 몰고 대교를 통과하는 퍼포먼스도 벌임.(사진5) 철도교는 2019년에 개통되었으니 최근까지 진행된 러시아의 국가적 프로젝트였음.
유럽에서 최장 거리(16km) 대교를 만든 이유는 병합한 크름반도에 생명줄을 이어주기 위함. 크름반도는 우크라이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뺏긴 뒤에는 모든 수송을 차단함. 수자원은 크름반도 위쪽의 드니프로강을 이용했는데 그것도 막힘.
러시아가 본토에서 크름반도에 석유, 비료, 곡물은 물론 기타 생필품을 공급해야 크름반도 주민들의 생존이 담보됨.
크름반도는 흑해의 대표적 관광지로 관광산업이 지역 경제에서 큰 비중 차지. 러시아의 무력 병합 후 국제사회의 제재로 관광객이 급감. 크름반도는 변변한 산업이 없기 때문에 러시아가 먹여살려야 하는 상황. 2014~2019년에 200억 달러를 지원했고, 크름대교 건설 또한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목적.
러시아와 푸틴에게 크름대교의 존재는 매우 상징적임. 한편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반드시 파괴해야할 상징이기도 함.
러-우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군이 크름대교 폭파 시도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음. 러시아는 쥐새끼 한 마리 못 들어온다 20중 방어망/감시망을 구축해놓았다며 자랑했음. (사진6)
우크라이나군이 이 정도 방어망/감시망을 뚫고 들어가서 폭파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다들 생각했음. (심지어 바다 속에 자폭 돌고래까지 풀어놓음)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폭발 사고가 났다는 급전이 타전되었을 때만 해도 피해 규모가 감지되지 않았음. 차량교를 지나가던 트럭에서 화재가 발생한 모양이다 정도였음.
대교에 설치된 CCTV 영상과 당시 근처를 운행하던 차량에서 찍은 핸드폰 영상이 올라오면서 피해 규모가 확인되기 시작했음. (*댓글의 관련 영상 참고)
오후가 되자 일부 우크라이나 인사도 계획적인 테러라고 주장. 우크라이나 측이 그랬다 치고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대교를 폭파할 수 있었는지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음.
폭탄을 가득 실은 드론 보트를 교각 아랫쪽에 접근시켜 자폭시켰다는 추측이 있었는데 교각이 멀쩡해서 금방 기각되었음.
트럭이 폭발하면서 바로 위로 지나가던 유류 운송 열차가 터지는 장면이 CCTV 영상으로 공개되자 폭발한 트럭이 무인 트럭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음.
하지만 무인 트럭이라면 대교 입구의 러시아군 검문소를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 따라서 우크라이나 특수부대 요원의 자살 트럭 테러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음.
눈여겨봐야 할 점은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의 능력과 거기에 대비되는 러시아 정보 당국의 무능함임. 지금까지의 추정이 맞다면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크름대교 검문소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현지 협조자를 사전에 확보해서, 폭발물 검색에도 걸리지 않게 폭탄을 설치했고, 유류 열차가 통과하는 시간까지 정확히 파악해서 트럭이 나란히 가다가 정해진 지점에서 터지도록 정확하게 세팅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 무슨 첩보 영화를 보는 것 같음.
이제 크름대교 폭파 사고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봐야 함.
너무 길어지고 있는데 여기까지 읽은 페친이 있으신지? 커피 쿠폰이라도 한 장 보내드리고 싶음. 애니웨이~
우크라이나는 전쟁 기간 내내 크름대교를 폭파하겠다는 의지를 미국 측에 강력하게 피력했다고 함. 푸틴은 크름대교를 건드리면 전술핵으로 보복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고 상황이 거기까지 가는 것을 원치 않은 미국 측은 승인하지 않았다고 함.
사실 우크라이나는 방어가 잘 되어있는 크름대교까지 직접 특수부대를 침투시킬 방법이 없었음. 멀리서 다리를 폭파하려면 투발 수단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교각을 정밀하게 타격해야 함. 그런데 크름대교까지 날아가는 장거리 미사일이 없음. 미군이 이미 공급한 하이마스(HIMARS)는 정밀 타격이 가능한데 사거리가 훨씬 못 미침. 그래서 2-3배 사거리를 가진 에이태큼스(ATACMS)를 요청했음. 그렇게 되면 푸틴의 코털을 뽑을 수 있는 일이라 거절당함.
크름대교 폭파는 러시아와 미국 모두 넘지 않으려는 일종의 레드 라인이었음. 그걸 보란 듯이 우크라이나가 넘어버린 것임. 미국 측에게는 이래도 우리를 못 믿고 우리가 요청하는 무기를 안 줄 것이냐는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러시아 측에는 전술핵 쓴다고 아무리 위협해봐라 우리는 겁 안 먹는다는 메시지를 준 것으로 봐야 함.
이것은 푸틴이 전술핵을 쓰겠다고 위협하면서 이 전쟁을 어느 선에서 마무리 지어야 하는지 서방세계 내부에서 분열의 조짐이 있는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임. 전쟁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할지는 당신들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음. 일부러 푸틴의 70살 생일날에 맞춰서 크름대교를 폭파한 것에서도 알 수 있음.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 헤르손 주를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보급에 타격이 있을 것임. 헤르손 주는 크름반도 바로 위에 있음. 수세에 몰린 러시아군이 이 지역은 절대 내줄 수 없다면서 병력과 장비를 대대적으로 보충해 라스푸티차(가을 우기, 땅이 완전히 뻘밭으로 변해서 군 장비 기동이 매우 힘듦)가 끝날 때까지 버티려고 함. 그런 후 땅이 얼어붙어서 기동이 가능해지는 12월부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려는 것이 러시아군의 계획.
이런 계획을 뻔히 알고 있는 우크라이나군 입장에서는 러시아군이 병력과 장비를 보충받기 전에 최대한 타격하고 수복지를 넓혀가야 함. 사진7은 얼마 전까지 크름대교를 통해 러시아군 전차가 헤르손 주 최전방으로 이동하는 장면임.
러시아 해군은 흑해함대의 기함 모스크바 호가 격침당한 후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요격을 피해 크름반도 세바스토폴의 잠수함을 모두 이동시킨 바 있음. 크름대교가 우크라이나군의 사정권에 있다는 것은 러시아군에게 적지 않은 골칫거리일 것임.
이제 러시아 측은 딜레마에 빠짐. 크름대교가 공격당했으니 이제부터 보복이닷! 하려면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방어/감시 시설을 다 무력화했음을 인정하는 꼴. 크름반도 주민들의 심리적 동요도 클 것임.
따라서 우크라이나군의 폭파 시도는 시시하게 끝났고 교량은 끄떡없으며 차량과 열차 통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대외적으로 우겨야 하는 상황.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에 대대적인 보복 조치(예를 들어 수도 키이우 집중 타격)를 할 명분이 없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머리싸움에서 러시아가 밀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임.
*이전의 크름대교 건설 시도는 다음 기사에서 인용 --> 아틀라스, 우크라이나의 폭파 위협 받는 크림대교(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