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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의 붕괴 이후, 크립토에 대한 규제체계 구축이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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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crypto burn

FTX의 붕괴 이후, 크립토에 대한 규제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체케티 교수가 흥미로운 관점을 제기한 칼럼(”Let crypto burn”)이 있어 소개하고, 약간의 소감을 덧붙여본다.

체케티에 따르면 크립토 규제체계의 구축은 결과적으로 전통기관들의 크립토에 대한 노출을 증가시킴으로써 금융시스템을 오히려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하고 FTX가 망해도 금융시스템에 거의 아무런 영향이 없는 이유는 크립토가 실물경제나 전통금융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종의 멀티플레이어 온라임 게임(예컨대 World of Warcraft)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크립토를 금융규제의 틀로 편입시키게 되면 은행들이 크립토를 구매할 수도 있고, 크립토를 담보로 대출하게 될수도 있다. 이는 결국 금융시스템이 크립토의 가격변동에 취약해지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크립토를 금융규제 체계로 편입하게 되면, 기존의 금융활동은 규제가 엄격한 전통금융에서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크립토로 옮겨갈 것이다. 빡센 규제를 받으면서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알쏭달쏭한 토큰을 발행하여 새로운 디지털자산으로 인정받으며 느슨한 규제로부터의 편익을 최대한 누리고자 할 것이다. 그 결과는 보다 취약해진 투자자보호, 보다 취약해진 금융시스템이다.

따라서, 정책담당자들의 목표는 크립토가 시스템적으로 무의미한(systemically irrelevant) 존재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내버려두면 최근의 FTX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불건전하고 불투명한 크립토의 세계는 이대로 유지되는 것이 불가능하고, 결국 스스로 타올라서 폭발하고 말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크립토에 대해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얘긴가 싶어서 좀 이상해보인다. 체케티 이후 며칠 뒤에 게재된 암스트롱의 칼럼(”Don’t regulate crypto as finance”)은 이 부분을 보완한다. 그에 따르면 크립토에 대한 규제는 도박이나 흡연에 준해서 하면 된다(며칠전 친구와 잡담하면서 크립토 규제는 마약이나 도박처럼 하는게 어떨까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내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접하니 반갑다). 달리 말하면, 명백한 사기나 절도 등을 규율하는 것으로 충분할 뿐, 일종의 금융상품으로 간주하여 재무부와 연준, SEC, CFTC 등이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 규제기관들은 충분한 사회적 효익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금융상품과 투자계약을 규제하고 보호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정체가 불분명한 크립토를 규제하겠다고 나서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크립토의 정체를 모른다. 크립토가 기존의 금융상품들처럼 나름의 사회적 효익이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들이 나서서 크립토를 일종의 금융상품으로 인정해주면, 오히려 체케티가 지적한 문제점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투자자(사용자)들에게 이것의 위험에 대한 충분한 경고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가 아직 크립토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는 지금, 함부로 금융상품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 암스트롱의 주장이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논의되는 디지털자산 규제방향을 보면… 현재의 구도는 숱한 코인/토큰들을 나름대로 분류해서 사실상의 증권에 해당하는 코인/토큰은 자본시장법으로 규율하고, 다른 애매한 코인/토큰들은 별개의 디지털자산법으로 규율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자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엄격하고, 후자에 대한 규제는 상대적으로 느슨할 것이다. 많이들 지적하시는 지점이지만, 이렇게 되면 정직하고 투명하게 발행자와 투자자의 권리의무 관계를 밝힌 토큰은 증권이 되어서 빡센 규제를 받게되고, 뭔가 알쏭달쏭하게 권리의무 관계가 애매해서 새로운 디지털자산으로 인정받는 토큰은 느슨한 규제를 받게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러면 누가 전자를 택할까?

사실은 양자의 구분 자체도 좀 이상하다. 증권이 아닌 새로운 디지털자산이라는 것의 정체도 이해하기 어렵다. 주식도 아니고 채권도 아닌데, 그래서 투자자가 배당도 이자도 청구할 권리가 없는데, 발행자의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어떤 유용한 쓰임새가 생기거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투자하는 자산??? 이를 투자라고 표현한다면, 발행자가 보장해주는 투자자의 권리는 아무것도 없는 사례 아닌가? 실질적으로는 기부한 것인데, 기부자가 자기 스스로는 투자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 아닌가? 발행자의 공시 의무가 있다고한들, 내 돈을 가져가서 맘대로 쓰면서 해주는것도 없는데, 뭘 하는지 가끔 알려주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결국 낯선 기술의 외피로 포장했지만 사실상의 스캠 아닌가? 이런 것들을 별개의 범주로 인정해주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촉진하고 장려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중개기관의 제거를 통한 효율적이고 안전한 거래, 즉 "탈중앙화"가 바로 그 혁신이라고? 가상세계의 머니게임은 어느정도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이 현실과의 접점을 찾고자 하는 순간 탈중앙화는 환상이다. 소위 디파이기 현실 경제와의 접점을 확보하려면 실물자산의 토큰화와 KYC가 필요한데 이를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탈중앙화 오라클“은 형용모순)

지난 4월, 옐런 재무장관이 디지털자산에 대한 규제방향을 논의하면서 등장했으며, 그 뒤로 널리 쓰이게 된 표현이 바로 “책임있는 혁신”(responsible innovation)이다. 이 표현은 크립토에 뭔가 혁신적인 것, 즉 우리가 촉진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바람직한 무엇이 있고, 다만 그것에 수반되는 위험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는 중립적인 방침이 아니라, 상당히 크립토 친화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가지의 기술적인 “기발함”을 제외한다면, 크립토의 “혁신”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다양한 자료들과 논문들을 보아도, 옐런 이후 미국 재무부와 FSOC가 발간한 일련의 보고서들을 읽어도, 이에 대한 해답은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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