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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 리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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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금(white gold) 전쟁.

멕시코 대통령은 최근에 이렇게 말했다.

"리튬은 정부 통제 하에 두어야 하는 전략 광물이다. 그것을 권력으로 다루는 사람들에게 리튬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결코 시장에 맡겨둘 수 없다."

막 칠레 대통령이 된 35살 가브리엘 보리치는 지난 달 선거 승리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조국과 공동체들을 파괴하는 프로젝트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 프로젝트 중 하나가 리튬 채굴이다. 그의 최우선 공약 중 하나도 광물 채굴권에 세금을 올리거나 아예 국유화하는 것이다. 두 좌파 대통령이 만나는 이유는 '리튬' 채굴을 어떻게 국유화할 것인가, 또 생태계 보존을 위해 어떻게 채굴을 통제할 것인가를 놓고 의논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이미 이웃국가 볼리비아로부터 톡톡히 선행학습을 받은 바였다. 2019년 볼리비아 좌파 대통령 모랄레스는 극우와 미국에 의한 쿠데타로 축출됐었다. 리튬 채굴에 대한 권리를 배타적으로 국유화하고 볼리비아 인민들에게 귀속시키는 순간, 바로 쿠데타가 발생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 눈독을 들이던 다국적 기업들과 볼리비아 우익 세력의 합작품이었다는 게 대체적 분석.

아마도 칠레와 멕시코 두 국가 정상은 볼리비아와는 다른 방식으로 국유화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일정 부분 시장에 틈새를 여는 방식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좌파 정부를 세우는 데 공헌한 원주민들의 요구를 생각하면, 막무가내의 채굴도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다.

리튬은 'white gold'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리튬 매장지로 전세계 기업들이 쇄도하고 있다. 이른바, 리튬 골드 러시다. 스마트폰, 랩탑 등 디지털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이미 필수 희토류로 그 시장이 가열되고 있었지만, 탄소중립에 따른 에너지 전환 때문에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재생에너지 등 배터리와 저장 장치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원자재. IEA에 따르면, 2040년에 이르면 2020년에 비해 세계 리튬 수요가 무려 42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에 남미 매장량이 가장 많다. 특히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이 3개국을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이곳이 전세계 리튬 시장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리튬 채굴은 호주가 가장 많고, 그 뒤를 칠레가 뒤따르고 있다. 칠레는 전세계 구리 생산의 30% 가량, 리튬의 경우는 20% 가량을 채굴한다.

남미 대부분의 리튬 채굴권은 다국적 기업들의 각축장이었다. 앞으로 리튬 시장은 폭발적으로 팽창할 것이고, 누가 리튬을 통제하냐에 따라 헤게모니를 쥐게 될 거였다. 중국, 미국, 유럽의 기업들이 남미의 리튬을 향해 부나비들처럼 날아들었다. 한국 기업들도 날아갔다. 생각해보라. 그 와중에 리튬이 매장된 그 거대한 우유니 사막에서의 채굴권을 국유화하고 배터리도 스스로 생산하겠다고 선언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가 그들 눈에 얼마나 미웠겠는가.




그런데 남미에서 핑크 타이드가 다시 재생되며 좌파 정부들이 리튬 채굴권에 세금을 인상하거나 아예 국유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전세계 광물 채굴권의 상당 부분을 이미 중국이 소유하고 있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 통제의 매장지가 다급할 수밖에. 그래서 현재 미 정부와 테슬라를 비롯한 빅테크 자본들이 네바다 사막의 개발을 부랴부랴 추진하고 있다. 말 그대로, 리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칠레를 통해 리튬의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다. 통상 전세계 리튬의 20% 남짓을 생산하는데 작년에는 30%까지 육박했다고 한다. 리튬 광물 하나만으로 칠레 GDP의 10%.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칠레의 리튬 채굴은 SQM과 Albemarle, 두 다국적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전자는 칠레 기반, 후자는 미국 기반의 기업.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Atacama 사막에서 리튬을 채굴하고 있다.

그런데 칠레 리튬을 가장 많이 채굴하고 있는 SQM은 원래 국영 기업이었다.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키고 권력을 잡은 후, 신자유주의를 칠레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민영화됐다. 당시 닥치는 대로 모든 걸 민영화한 칠레였다. 현재 피노체트 부부는 사망했지만 그의 유족들 몇몇이 SQM의 지분을 갖고 있다. 그 동안 리튬을 독점적으로 채굴하며 떼돈을 긁어 모았다.

사막 지하에서 광물과 염수를 끌어올려 리튬을 채굴하는데, 중요한 건 '물'이다. SQM은 염수는 물이 아니라고 악다구니를 치고 있지만, 현재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은 물 때문에 아우성이다. 근방의 강과 지류와 습지가 다 메마르고, 식수조차 얻기 힘든 상황이다. 사막의 급격한 건조화는 되먹임 과정 때문에 그 지역을 더욱 건조하게 만든다. 응당 기후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장이 이렇다. 'The company steals our water'.

또 리튬 채굴은 독성을 가진 화학 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하수와 토지,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원주민들이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그 동안 다국적 기업들은 환경 평가를 제대로 받은 적도 없다. 칠레의 SQM 경우, 이를 피하기 위해 부패한 정치인들과 관료들 호주머니에 계속 돈을 쑤셔넣어왔다. 원주민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체불도 빈번하다. 또한 리튬 채굴 과정에서 당연히 탄소도 배출된다. 광물 채굴에서의 탄소 배출은 늘 뒷전으로만 취급된다.

"친환경 전기자동차는 실제가 아니다. 이데올로기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친환경이 결코 아닌 것이다. 1세계는 전기자동차를 친환경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친환경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난 시기,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리튬 채굴 지역의 원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해왔다. 환경운동가들의 지난한 투쟁도 있어왔다. 최근 남미에서 좌파 세력이 탄력을 받게 이유 중 하나가 원주민들의 고통이었다. 광산 노동자들의 고통이었다. 그 고통에 정확히 응답했다는 이유로 볼리비아에선 피의 쿠데타가 발생했고, 그 쿠데타 세력을 몰아낸 것도 국토를 가로지르며 시위를 했던 원주민과 광산 노동자들이었다. 멕시코의 경우, 리튬 때문에 마피아들까지 들끓고 있다. 서로 토지를 갖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남미 리튬 매장지 지역 공동체들에선 점차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35살 급진좌파 대통령 후보였던 가브리엘 보리치는 '기후위기와 광물'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올렸던 것이다. 칠레는 피노체트가 물 자원에 대한 모든 접근을 민영화한 나라다. 세계에서 유일하다. 그 덕에 물 자원 관리와 상하수도 시설이 형편없이 낙후됐다. 가브리엘 보리치는 리튬과 구리에 대한 채굴에 세금을 인상하고, 또는 아예 채굴을 국유화하는 방식으로 돈을 모아 깨끗한 물을 다시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에너지 인프라를 뜯어고쳐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칠레는 제헌의회를 통해 광물 채굴을 민영화한 피노체트 헌법을 뜯어고치고 있다. 미래 세대와 생태계 보존을 위해 리튬 채굴을 제한하는 규정을 박아 넣었다. 제헌의회에는 환경운동가, 원주민, 청소년 등 당사자 주체들이 들어가 있다. 당연히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엊그제 칠레의 하원은 피녜라 전 정부의 리튬 계약을 모두 중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중도우익 피녜라 정부는 임기 말기에 허겁지겁 리튬 채굴권을 다른 다국적 기업들에게도 허용하는 계약을 체결했었는데, 그걸 모두 중지시킨 것이다.

앞으로 리튬 전쟁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도 쉽지 않다. 키를 쥐고 있는 남미 좌파 정부들이 어떻게 궤적을 그릴지 아직은 미지수겠다. 하지만 몇 가지 교훈은 있다.

에너지와 자원을 시장에 맡겨두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남미 리튬 매장지에서 발생하는 저 고통과 비명들이 현재 한국 농촌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난립하는 태양광 마피아들 때문에 빚어진 저 대환장 혼란 말이다. 시장에 이렇게 먹잇감처럼 던져놓으면 이런 혼란이 발생한다. 현명한 기후위기 대응의 첫걸음은 '기후 재앙'을 팔아먹으며 반환경 전기자동차를 친환경 전기자동차로 둔갑시켜 판매 사원을 자처하는 활동이 아니라, 에너지를 공공화하는 것일 게다. 우리 모두에게 귀속시키는 것 말이다. 그래야 고통과 혼란이 줄어든다.

두 번째는 '친환경 전기자동차'는 지금 이대로의 성장과 지금 이대로의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원주민의 고통과 탄소 배출에 맞먹는 환경 파괴를 은폐하는 상징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기술주의자들이 떠받드는 그린수소를 위해 지금 북아프리카 지역의 원주민들이 태양광 때문에 어떻게 고통 당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전기자동차가 깨끗한 게 아니라 더러운 것이라는 걸 먼저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더러운 정도를 알아야 조금이라도 더 깨끗해지지 않겠냐는 말이다. 공정한 체제로의 전환, 지금과는 다른 경제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당신이 삐까뻔쩍한 전기자동차 사진을 SNS에 올리는 사이에도, 저기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어느 농부는 어린 나무 묘목을 살리기 위해 피 같은 물을 주고 있다. 그 차이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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