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트업_어쩌면 애초에 풀 수 없었던 문제>
얼마 전 한국의 유명 MCN 샌드박스가 계속되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권고사직에 돌입했습니다.
무너지기 시작한 유명 스타트업은 샌드박스 뿐이 아닙니다. 한국 스타트업의 헤비급 플레이어인 컬리는 IPO 플랜이 대차게 실패하며 자금난의 현실화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준척급인 왓챠-매쉬코리아는 사실상 매각 외의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밑급의 스타트업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오늘회-탈잉을 필두로 우수수 붕괴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저는 지금 이 상황의 원인을 기업의 부실에서 찾는 쪽에 속합니다.
흔히들 기업을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 사업을 그 문제를 해결해 돈을 버는 일련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다만 저는 그 표현을 스타트업에 적용하는 데에 있어 조금 변용하고 싶습니다. 제게 스타트업의 사업은 구조적 문제에 부딪혀 붕괴하는 하나의 과정이고, 스타트업은 그 결말을 회피하려 분투하는 주체입니다.
세상에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 사업은 없습니다. 모든 사업에는 그 사업이 가진 태생적 난항이 있습니다. 어떤 사업은 TAM이나 수요가 BEP를 넘기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어떤 사업은 비용 구조를 개선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고, 또 어떤 사업은 필연적으로 막대한 자본 경쟁을 요구합니다. 해당 문제—그 구조적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유전병 같은 존재입니다.
이 문제가 스타트업에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스타트업이 양적인 측면에서 쾌속성장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빠른 성장은 시간-인력-자금 모든 측면에서 레버리지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일반 자영업은 정체해도 견딜 수 있지만, 스타트업은 그걸 지향하지 않고 애초에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타트업은 태초부터 폭탄 목걸이를 달고 활동하는 기업이라고 봐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투자자는 자금 수혈을 통해 폭발을 ‘지연’ 시켜주는 주체이고, 기업은 해자 구축을 통해 폭탄 목걸이를 ‘해체’하려는 주체입니다. 그리고 그 해체의 증거는 양질의 재무상태와 현금 창출 능력입니다.

구조적 문제의 난이도와 그 해체 방책—해자 구축—의 난이도는 대체로 비례합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3줄로 풀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스타트업이 매출이나 유저 지표에 집중한 ‘쉬운 풀이’로 자신이 마주한 어려운 문제를 상대하려 한 듯 보입니다. 일단 사업 키우고 보면 적자는 해결되겠지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샌드박스는 자신이 크리에이터 시장에서 철저하게 을이라는 한계를 지닙니다. 크리에이터 시장의 갑은 크리에이터입니다. MCN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보조입니다. 시장이 커지는 만큼 매출이야 어느 정도 늘어갔지만, 시다가 공장장보다 갑이 되어 돈을 더 떼어 간다는게 쉬울 리가 없습니다. 샌드박스는 그 문제를 극복해야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컬리의 경우, 컬리의 신선식품+새벽배송의 BM은 비싼 냉매와 물류에 대한 비용이 지출된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끔찍한 마진을 형성합니다. 컬리는 돈을 열심히 태워 양적 성장에 집중해 매출은 늘 빠르게 성장했지만 구조적인 문제—저마진—은 늘 그대로 방치되었습니다.
왓챠는 애초부터 OTT 시장 특유의 ‘돈 태우기 경쟁’ 탓에 낮은 마진과 향후 성장 저하가 예고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왓챠는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매쉬코리아의 구조적 문제는 라이더의 높은 인건비였습니다. 회사는 높은 인건비 탓에 unit economics가 제대로 구축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회사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저는 지금 저들의 실패가 정말 저들이 뭔가를 못해서 발생한건지에 대한 회의를 가집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들의 구조적인 문제는 애초부터 절대 해체할 수 없는 문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좋은 상품과 좋은 기업의 개념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상품이란 말 그대로 높은 가치를 가진 상품이지만, 좋은 기업은 구조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기업입니다. 그리고 극복 가능한 구조적 문제란 organic한 해자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의미합니다. 그 해자는 기술력 및 캐파(쿠팡 등)가 될 수도 있고, 유저(네이버, 카카오 등), 재미(크래프톤, 시프트업 등)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저희가 주목해야 할 것은 1. 사업에 따라 구조적 문제의 종류와 수준이 다르고 2. 또 그에 맞춰 요구되는 해자의 종류와 수준이 달라진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하게 3. 문제의 난이도와 보상의 크기는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