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인슈타인과 아들 한스. 젊은 아인슈타인은 아들의 유모차를 끌면서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을 정도로 아들을 끔찍이 아꼈다. 하지만 이혼한 뒤 아들과의 사이는 꽤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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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아들이 자신의 모교인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ETH)에 입학하자 기뻐하며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한스가 물리학 대신 토목공학을 선택하자, 크게 실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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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ETH를 졸업하던 1926년, 아인슈타인은 다소 특이한 논문 하나를 발표한다. 강물의 침식과 퇴적에 관한 이론이다. 상대성 이론으로 우주를 논하던 대학자가 갑자기 토목공학의 한 분야인 수력학, 즉 유체역학 논문을 쓴 것은 다분히 아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두번째 사진은 이 무렵의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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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들의 결혼 문제로 아버지와 아들은 다시 틀어진다. 한스가 9살 연상의 평범한 여성과 결혼을 강행하자, 아인슈타인은 격분한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1930년 한스가 아들을 낳자,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에게 손자가 태어나자 아인슈타인은 다시 아들과 화해한다 (세번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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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역시 이 무렵 다시 아버지의 길을 따른다. 철제 교량 엔지니어를 그만두고 ETH 대학원에 진학해 아버지가 남긴 논문에서 출발한 강물의 침식과 퇴적에 대한 연구로 1936년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미국으로 망명해 칼텍을 거쳐 버클리 대학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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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는 미국 토목학계의 거두가 되었다. 특히 그가 아버지의 논문에서 발전시킨 강물의 침식과 퇴적 이론은 토목분야의 고전이 되었고, 미국 토목학회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한스 아인슈타인’상을 매년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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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3년 사망했으며, 아인슈타인의 가계는 한스의 자녀 4명에 의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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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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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도 인간으로서의 삶은 재미있었네요
ㅎㅎ 그냥 상대성이론만 항상 듣다보니 그의 삶은 들어보질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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