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굴벤키안 재단은 태국의 국영기업에게 자신들이 보유한 Partex를 매각함으로써 100년이넘는 가문의 석유산업 관여가 끝이 났습니다. Partex는 사담후세인과 터키정부의 국유화조치로 많은 자산을 잃었지만 오만에서 나름의 지분을 가진 회사입니다.
재단의 창립자 칼루스테 굴벤키안이 말년에 살았던 도시 리스본엔 그가 만들어놓은 대형정원과 컬렉션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굴벤키안은 20세기의 석유역사에 중요한 인물로써 이라크석유를 처음 개발한 사람입니다. 19년에 가문재단에서 직접 도움을 줘서 만든 평전인 Mr five percent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의 별명이자 어떠한 회사라도 5퍼센트의 지분을 보유해서 붙여진 별명인데요.
그는 성에서 알수있듯이 아르메니아계입니다. 원래 국적은 오스만이었고요. 아르메니아 귀족 출신으로 이스탄불에서 출생했습니다. 아버지 Sargis Gulbenkian은 오스만제국의 고위 관료였고 트레비존드의 총독을 맡을정도로 높은 위치를 지냈지만 공직에서의 성공보단 돈을 추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면화수출이 급감했고 대안 수출품으로 등유를 유럽에 수출하는걸로 바뀌었는데 전기등이 보급되기전 등유는 유럽에 필수품으로 작용했습니다. 미국의 등유는 전세계에 엄청나게 팔렸지만 러시아제국같은 국가에선 미국이 거리가 너무 멀었으니 매우 비싸게 팔리기도 했죠.
그러나 러시아제국의 카프카스 영토중 하나였던 아제르바이잔에서 대량의 석유가 발견됩니다. 러시아의 1세대 유전인데(2세대는 볼가강 유역, 3세대는 동시베리아, 4세대는 사할린) 러시아는 당시 정제기술이나 채굴기술이 부족했기때문에 각국에서 전문가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스웨덴 출신의 화학자 집안 노벨가문이 엄청난 재산을 모았던것도 아제르바이잔이었습니다. 노벨하면 노벨상 제정자인 알프레드 노벨이 제일 유명하지만 석유역사에선 그의 형이 루드비히 노벨이 더 중요한 인물입니다. 러시아도 유전을 통해 등유를 생산하게 되었고 수출을 해서(여기서 로스차일드와 엮임) 미국의 제품지배력을 계속 감소시켰습니다.

Sargis Gulbenkian은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등유를 오스만제국에 파는일과 석유산업 투자로 엄청난 부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자식을 프랑스와 영국에 유학을 시켜서 많은 배움을 쌓게 했습니다.
당시 오스만제국의 재무 장관인 Hagop Pasha(아르메니아계)는 제국의 재정충당을 위해 노력한 사람인데 칼루스테 굴벤키안에게 이라크지역 탐사를 지시했고 그곳에서 대량의 석유가 매장되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이지역에서 사업을 개시하려 했으나 한 사건으로 몇년후 오스만제국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 술탄은 압둘하미트2세였는데 치세당시 오스만제국은 엄청난 위기에 쳐해있었습니다. 러시아제국이 크림전쟁 패전의 복수로 발칸반도와 카프카스지역에서 지속적인 전쟁을 걸었고 그 지역에 있는 민족들은 민족주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채로 독립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제국은 다민족의 구성인데 이게 해체되는 순간 엄청난 문제가 터져서 이걸 최대한 막으려 했던게 사진2의 압둘하미트2세였습니다 물론 1차대전 패전으로 죄다 쪼개지지만 오스만입장에선 분리주의 시도는 용납할수 없었습니다. 강경책을 선택했기때문에 Hamidian Massacres가 발생합니다. Hagop Pasha는 끝까지 충신으로 남았지만 굴벤키안은 오스만을 떠났고 영국인이 됬습니다.
카이로에서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석유거물 Alexander Mantashev은 굴벤키안에게 영국인들과 인맥을 강화하게 도와주었고(스탈린이 혁명가시절 Mantashev의 시설에서 파업주도)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에서 크기시작한 Royal Dutch Petroleum과 Shell의'합병에 영향을 줘서 Royal Dutch Shell의 등장에도 공헌하게 됩니다. 여기서 지분 5퍼센트를 확보해 나중에 중요한 결정마다 이름을 남기게되는데 그의 별명이 여기서 왔습니다.
1909년 청넌 투르크당은 쿠테타를 일으켜서 압둘하미트2세를 퇴위시켰는데 그러자 굴벤키안은 바로 오스만에서 중용됩니다. 그 이후 이라크석유를 개발하게될 터키석유회사 TPC의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1차대전의 발발로 독일과 영국이 합작하는 석유개발은 깨졌지만 여기에 프랑스를 참여시키면서 프랑스에도 다량의 인맥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28년의 이라크에서 대형유전이 발견되자 오스만제국이 뺏긴영토에서 석유가발견될시 같이 이익을 공유하자는 레드라인협정을 주도해서 지분 15퍼센트를 가져갑니다. 이건 opec의 전조인 카르텔로 평가되며 이걸로 세계 최고수준의 부자가된건 덤이었죠
그는 아르메니아 민족들을 부자인 자신이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석유수입5퍼센트. 노동자의 5퍼센트는 아르메니아인을 고용하게 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도서관은 그의 돈으로 지어졌죠.. 많은 부를 미술품을 구입하는데 사용하였는데 러시아혁명 1차대전 패전으로 인한 독일의 혼란등으로 미술품등이 엄청 많이 시장에 쏟아져나왔기에 그의 컬렉션은 엄청난 수준입니다. 물론 재산세를 덜내려고 호텔방에서만 사는것같은 꼼수도 많이 부렸지만요 리스본에선 그가 소유한 렘브란트 루벤스 모네의 그림을 볼수있습니다.
https://gulbenkian.pt/museu/en/collection/discover-the-collection/
Ps . 그전에 모사데그의 얘기를 했는데 중요한 인물 한두명씩 포스팅하겠습니다
출처 : 김용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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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다양한 인물이 가득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