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관해 간단히 정리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하는 일이 매일 뉴스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기도 해서, 국제 관계들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기록 삼아 남기려는 의도도 또한 있다.
독일이 결국 자국산 전차의 우크라이나로의 제공에 동의하였다. 동시에 미국도 자국산 전차의 우크라이나 제공을 발표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우크라이나 군은 이 전차들을 이용해서 러시아와의 전쟁에 승리할 수 있을까?
보통 새 무기가 도입되면, 그 무기 체계도 학습해야하고, 조작법부터 운용까지 실전에 적용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냥 배우기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학습 후에 훈련까지 끝마쳐야 한다. 전차를 제공하기로 한 나토측 국가들이 그런 기본도 모르고 무기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2023년 내에 이 전쟁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건가?
다시 이 전쟁의 의미를 조금 짚어보자.
러시아는 서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이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에너지를 무기로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해서 우크라이나의 빠른 항복을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 착각하고 전쟁을 개시했다는 이야기가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석이다. 물론, 그 판단은 오판이었고, 지금까지 유무형의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에 원했던 것 조차도 제대로 얻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러시아 군은 전쟁 발발 전 이미 러시아 영향권에 있던 일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자치구역에 비해 그 3배 이상되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 이는 이미 전쟁 전부터 러시아 영토로서 선언한 크리미아 지역을 육로로 접근할 수 있는 회랑을 확보했다는 전략적 가치를 이미 취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슬슬 이 정도에서 러시아는 발을 빼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내부의 여론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반대로 우크라이나 쪽을 보자.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의 국내 정치 지형은 친러와 반러의 팽팽한 대립이었다. 하지만, 친러의 아성이던 크리미아가 러시아로 편입되고, 돈바스 일부 지역이 자치를 선언하면서, 전체 우크라이나의 정치 구도는 반러시아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이런 우크라이나 정치의 성향 변화가 푸틴, 아니 러시아의 맘에 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EU, 더 나아가 나토까지 가입하게 되면 모스크바는 꽤 긴 국경선을 나토군과 마주해야 한다. 이것은 러시아의 입장에선 아주 부담되는 일이다. 이미 나토 회원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국경선과 우크라이나 국경선은 그 길이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까지 도달하는 루트의 지형적 특징을 고려해도 그 심각성이 비교가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새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친 서방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 우크라이나는 가진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안 된, 그러나 발전 가능성이 다른 동유럽 국가들 보다 큰 곳이라서 서유럽 국가들의 관심도 못지 않게 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양과 질 양쪽 모두 열세인 군사력을 극복하면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민간인의 희생을 제외하면 꽤나 대등한 전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나토측 특히 미국의 도움에 크게 기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부족한 무기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이 알려진 것 보다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정보전에서 미국은 거의 직접 개입한 것과 다름 없는 지원을 보내주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기서 이 전쟁의 또 다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군은 나토-러시아 전쟁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공식적으로는 나토 가입국이 아니므로, 미국을 비롯한 나토측 입장에선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빙자한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하고 있는 셈이고, 이는 러시아의 입장에선 화가 나는 일이다. ‘저것들이 도와주지만 않으면 벌써 끝났을 전쟁’이라는 게 러시아쪽 입장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폴란드를 비롯한 나토 가입국 입장에선 친 러시아 국가(만약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패하여 러시아 괴뢰정권이 우크라이나를 장악한다는 가정하에)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지금 상황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열심히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러시아의 입장과 크게 다를게 없다.
자, 그럼 2023년 1월 말이 다 되어 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짚어보자.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전쟁 전에 비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를 더 많이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직접 크리미아까지 육로를 연결할 수 있는 회랑을 마련한 결과가 되었다. 이 정도의 결과를 의도했건 안했건, 러시아의 입장에선 일부 승리를 선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지난 가을 이후로 러시아 점령지의 상당부분을 수복했다. 아직 충분하진 않지만,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실지 회복마저도 가능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나토의 도움이 절실하다. 러시아에 비해서는 적은 비율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병력 손실이 나오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크라이나는 더 불리하다. 가용 병력 수의 차이를 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현재 상황은 70년전 한국 전쟁에서 우리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물론 그 때는 우리가 독자적인 작전수행능력도 병력도 없었지만, 적어도 남한 국민들은 이 기회에 공산화된 북쪽 영토 수복을 간절히 바라며 이를 연합국 측에 요청했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 자체가 교착상태에 빠지기 전까지 비록 남의 힘을 빌리는 상황이지만, 실지 회복에 대한 기대가 절실했었다. 지금 우크라이나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점령지 수복은 물론 2015년 빼앗긴 크리미아까지 다시 수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대로 전쟁이 끝나버리면 크리미아 수복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우크라이나 자력만으로는 매우 불가능해 보인다. 나토로부터 ‘충분한 지원’만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정도일 뿐...
미국을 비롯한 나토의 입장은 좀 애매하다. 지금 현재 상태로 전쟁을 끝내는 그런 정전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러시아는 현 상태에서 종전을 선언해도 얻은 것이 있는 상황. 그렇기에 미국이나 나토가 종전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전제조건은 최소한 전선 자체가 2022년 2월말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상황 정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정도까지 러시아 군을 밀어내야 종전 협상이건 뭐건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 군이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면, 이는 나토군의 패배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차 제공은 우크라이나 군이 러시아 군을 전쟁 발발 이전 상황으로까지 밀어내는데 힘을 보태기 위한 지원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은 한 두달에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 목적이 달성되면, 더 너머로 크리미아까지 진군하고자 하는 우크라이나 군을 오히려 나토군이 막아설 것 같다. 무기 지원을 중단한다거나, 정보 제공을 중단하는 방법으로 이는 쉽게 실현 가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크라이나 군부를 충분히 장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젤렌스키는 전쟁 종전 직전에는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국민에겐 영웅일 수 있겠지만, 군부에게 그는 그저 세일즈맨일 뿐인 것 같다.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그런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표적 타격이 안되는 미사일 기술, 10년 넘게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적군의 거점 정보, 군사 강대국으로서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러시아 군의 허접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적국 민간인들의 희생을 불러왔다. 지난 연말 NYT에 실린 전쟁 초기 부차(Bucha)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은 그런 면에서 러시아 군의 캐릭터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면 이라고 하겠다.
종전까지는 생각보다 멀 것 같다. 우크라이나의 실지회복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의 삽질도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뭘 기대하건 그 이하를 보여주는 러시아의 삽질이 계속될 것 같다. 미국의 지원도 어디까지 계속될 지 알 수 없다. 최대 군사 강국이라는 미국도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진정한 의미의 승리를 거둔 전쟁이 실질적으로는 한 번도 없다. 게다가 그 잘난 미국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을 미국 의회는 이미 여러 번 보여준 역사가 있다.
이젠 적어도 민간인 희생자들이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민간인들에게는 전쟁이 끝나도 고통은 끝이 아니다. 전쟁이 끝나도 우크라이나는 대 재건의 붐이 불 것 같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이라크나 아프리카 같은 나라들과는 주민들의 생활 수준과 기대치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인건비가 비싸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는 전쟁이 끝나면 한 번 할 수 있을지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트레이더가 본, 그러나 트레이딩이랑은 크게 관계는 없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간략한 소회를 기록해 보았다. 하도 논란이 되는 주제라서 퍼가실 땐 누구신지 알려주시고, 퍼가신 곳에서도 출처를 밝혀주셨으면 한다.
2023.01.25. 18:50 GMT 이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