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물음을 짚어봤습니다.
'자본주의'의 논리와 '산업'의 논리는 같은 것인가?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산업'의 논리를 대변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프레시안'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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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의 본성은 산업보다는 금융 쪽에 더 가깝다. 돈을 불리는 것이 유일 절대 목표이며, 사회의 다른 모든 활동을 이 한 가지 목표에 복속시키려 한다. 여기에서 착시가 생긴다. 돈을 불리는 효과적 방법 가운데 하나가 생산, 서비스와 새로운 기계를 결합하는 것이기에 자본주의는 늘 산업혁명과 함께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산업의 영원한 수호자는 아니다. 아니, 재무제표에 적히는 화폐 수익을 위해서라면 자본주의는 오히려 주저 없이 산업을 희생시킨다. 금융이 산업을 압도한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에 가장 충실한 자본주의일 따름이다.
이번 파업 와중에도 우리는 이러한 시각을 대변하는 글들을 온라인에서 숱하게 볼 수 있었다. 가령 올해 1분기에 대우조선 매출액이 13% 가량 늘었으나 영업손실이 줄기는커녕 120%나 증가했다는 사실을 들며 이런 기업이 유지되어야 할 이유가 있냐고 묻는 글들이 떠돌았다. 그 중에는 경영진의 무능을 비판하려는 취지에서 쓰인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런 단기 실적에 주목하는 글들은 하나같이 다 다른 산업과는 구별되는 조선업만의 특성에는 눈을 감았다. 철저히 재무제표의 숫자로만 판단하는 금융인의 입장에서 이 거대한 산업, 기업의 운명에 훈수를 두었다.
회계장부 속 검은 글자만 신성시하는 태도는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기업 회계장부에는 이윤을 남기는 과정에서 혹사당한 노동자의 사연이나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와 폐기물이 방출된 이야기 따위는 실리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모순과 재앙이 이 구조적 누락으로 거의 다 설명될 수 있을 지경이다.
한데 장부에서 생략되는 것이 이런 이야기들만은 아니다. 기업 재무제표에는 자본주의와 산업이 함께 하며 남긴 상처와 부작용뿐만 아니라 그 거창한 위업조차 누락돼 있다. 거기에는 한때 금융 투자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진수되던 거대한 배들의 이야기도 빠져 있다. 이런 배들은 비록 대기에 탄소를 뿜어내고 바다에 기름을 흘리기는 했을지언정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이 세상에 내놓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인간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는 걸작이었다. 대우조선의 재무제표에는 이런 이야기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 표 바깥의 더 큰 진실에 무감각하다.
물론 가장 가관인 것은 현재 대우조선해양 최대 주주인 한국산업은행이다. 이름이 무려 ‘산업’은행이다. 또한 공공기관이다. 그러나 지금 이 기관은 공공성을 추구하기는커녕 산업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는다. 산업은행은 어쩌다 떠맡게 된 대우조선을 현대 재벌에게 매각하는 데만 골몰했을 뿐(결국 실패했지만) 한국 조선산업과 그 역량을 살려나가는 방향에서 이 기업을 운영하려고 고민하거나 노력하지 않았다. 말이 ‘산업’은행이지, 부도기업을 인수한 민간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금융의 시야에 갇혀 있을 따름이다.
어찌 일개 공공기관 탓이기만 할까. 몇 달 전까지 여당이었던 거대 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번 파업이 다단계 하청, 저임금 구조 등의 오래 된 여러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러나 이 당이 집권당이던 지난 5년 동안 정부-여당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어떠한 노력을 했었는가? 정부가 대우조선을 현대 재벌에게 떠넘기려다 실패했다는 것 말고 나는 다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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