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님글 ㅣ 11월의 마지막 주말이네요. 이제 조금씩 동장군이 그 위세를 드러내는 듯 합니다. 2023년의 마지막 달이 성큼 다가온 만큼 뜻깊은 갈무리를 하셨으면 합니다. 바로 시작합니다.
제 에세이를 계속해서 보셨던 분들은 올해 초 연간 전망을 기억하실 겁니다. 제목을 “고지전”이라고 했었죠. 제가 봤던 영화 중에 “고지전”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이.. 어쩌면 지금의 시장을 보면서 느끼는 점과 상당히 비슷하기에 적었던 타이틀이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고지를 탈환한 다음에 짐을 풀자고 하니까.. 기존부터 고지전을 해왔던 악어 중대 대원들이 바로 “어차피 다시 빼앗길 건데 뭐하러 그러느냐”는 답을 하죠. 어쩌면 무언가 시장의 흐름이 하나의 루프처럼 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런 루프에 인플레이션이라는 진짜 잡초 같은 넘이 자리하고 있다면… 비슷한 그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당시에 했구요, 그 고민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실제 올해 1월 시장을 환호하게 했던 올해의 히트 단어가 있죠. 1월 말 있었던 FOMC에서 파월이 직접 언급하죠.. 바로 “디스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억눌리고 있다는 것이죠.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빠지는 거지만.. 디스인플레는 인플레가 억제가 되는.. 그런 그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연초에 디스인플레에 환호했던 시장은 지난 5~6월을 거치면서 한 번 크게 실망을 했구요… 10~11월로 넘어오면서 다시금 디스인플레에 열광하고 있죠. 최근 기사 타이틀만 하나 인용하고 갑니다.
“’디스인플레이션 확인됐다’.. 환호한 금융시장”(조선일보, 23. 11. 15)
이제 게임이 끝난 건가요? 그런데요..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 디스인플레이션에 대한 디스를 누군가가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디스인플레를 디스한다?? 네.. 디스인플레이션이 보다 빠르게 진행되어야 할텐데요.. 이런 현상이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겁니다. 누구일까요. 인용해봅니다.
“이자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도 이날 최근 유로존에서 나타난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과정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연설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인플레이션을 2.9%에서 2%로 낮추는 데 2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슈나벨 이사는 현재 소비자 물가가 지난해 최고치 10.6%에 비해서는 크게 낮아졌지만, ECB 목표치까지 가는 것은 장거리 달리기의 마지막 구간을 달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뒤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이유로 임금을 끌어올리는 노동시장 호조와 서비스 부문의 고집스러운 물가를 꼽았다.”(연합인포맥스, 23. 11. 22)
네. 유럽중앙은행의 슈나벨 이사인데요.. 이 분이 지난 22일 인터뷰에서 다음의 코멘트를 했던 거죠. 첫 문단에 생생히 나와있는 표현 보이시죠?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라는 표현… 네.. 인플레이션이 약해지는 것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한다는 겁니다. 네.. 인플레가 약해지는 속도가 매우 느려질 것을 암시하는 것이죠. 그래서리.. 그 뒤를 보시면 인플레를 2.9%에서 2%로 낮추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두번째 문단에서 장거리 달리기의 마지막 구간이라는 얘기를 하죠. 마라톤 뛸 때 마지막 구간이 참 힘들다고 하죠. 마지막 1KM가 앞의 1KM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겁니다. 100점 만점 수능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30점에서 40점으로 올리는 10점과.. 마지막 구간에서 90점에서 100점으로 올리는 그 10점은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까요? 90점에서 100점이 되어야 스카이를 갈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100까지 올리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요.. 유럽중앙은행의 슈나벨 누님은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나벨이 누나는 유럽의 불라드다.. 라구요.. 네.. 워낙 매파이신 게 맞습니다. 매파가 매파한 거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데요.. 이런 해석과는 달리 우리 ECB의 라가르드 누님 얘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용합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2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지금은 승리를 선언할 때가 아니다"면서 "인플레이션을 우리의 목표치까지 끌어내리는 데 집중해야 하며, 단기적인 상황을 근거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끈질긴 인플레이션 위험에 계속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실제로 향후 몇 달간 물가 상승 속도가 가팔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인포맥스, 23. 11. 22)
다시금 물가 상승 속도가 가팔라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죠. 그리고 단기적인 상황을 근거로 성급한 결론을 내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실제 라가르드 누님은 내년 4월부터는 ECB가 금리 인하에 들어갈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에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향후 최소 2개 분기 동안 금리 인하는 없다는… 고육책을 제시하면서까지 시장의 기대를 꺾어놓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시죠. 지금의 디스인플레 상황이 조만간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리고 있는 겁니다.
그건 유럽의 상황이지.. 미국과는 다르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하실 겁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인데.. 왜 유럽 얘기 주구장창하느냐… 라는 얘기일텐데요… 지난 11월 초 FOMC 의사록에 담겨있던 내용을 발췌해서 인용합니다.
“의사록은 "위원회가 신중하게 진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참석자들은 인플레이션이 2% 목표치로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저 많은 데이터를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제활동의 지속적인 모멘텀으로 인해 디스인플레이션이 정체되거나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속화할 수 있다"면서 "향후 입수되는 정보에 따라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통화정책을 더욱 긴축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아시아경제, 23. 11. 22)
밑줄 그은 부분을 읽어보시면… 디스인플레이션이 정체되거나 인플레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표현이 나와있죠. 네.. 올해 초 시장의 기대를 한번에 불러일으켰던 그 아름답던 단어… “디스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에 대한 우려를 ECB와 Fed 모두가 표명하고 있는 겁니다.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면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자산시장을 보면서 연준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이런 얘기들은 비단 미국과 유럽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다음 인용문 보시죠.
“불록 총재 취임 후 지난 9월 호주 인플레이션은 2022년 말 8.0%를 넘었던 최고치에서 후퇴하고 있었다. RBA 전문가들은 전임 로우 총재 체제에서 시작된 금리 중단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지난 7월부터 넉달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RBA는 이번 달 초 금리를 다시 0.25%포인트 올렸다. 단기 근원 인플레이션에 대한 전망을 대폭 수정하며 공식 현금 금리를 12년 만에 최고치인 4.35%까지 인상했다.
불록 총재가 시장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 내용 또한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불록 총재는 지난 22일 시드니에서 열린 호주이코노미스트협회(ABE) 모임 연설에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완고한 '자국 내' 가격 압력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RBA 의사록에서 글로벌 공급 충격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사라졌다. 이제 인플레이션은 매우 국내적인 문제이며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위험이 있다는 게 RBA의 시각이다. 불록 총재는 "글로벌 공급 충격이 사라지면서 남은 인플레이션 문제는 국내 수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물가 압력은 임대료, 전기료, 연료 가격 급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연합인포맥스, 23. 11. 24)
호주 중앙은행 얘기인데요… 호주는 지난 6월, 기존의 로우 총재가 물러나며서 새롭게 불록 총재 체제로 변화를 주었죠. 참고로 로우 총재가 조금 안좋게 물러났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던 것이.. 로우 총재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호주 경기가 둔화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매파 기조를 이어가자 호주 정부에서도 상당한 반감을 나타내었던 바 있죠. 이후 불록 총재로 교체되면서 호주의 금리 인상은 사실 상 끝났다.. 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만… 불록 총재는 교체된 이후 7월에 바로 기준금리를 인상했죠. 호주는 이미 3월인가부터 기준금리 동결에 들어갔는데요.. 상당 기간 동결을 이어오다가 다시금 금리 인상에 나섰던 겁니다. 그리고 최근 불록 총재는 여전히 인플레 압력이 높음을 강조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을 고민하고 있죠.
인용문의 후반부에는 흥미로운 얘기가 나옵니다. 지금의 물가 상승은 더 이상 공급망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죠. 공급이 잘 안되어서 물가가 오른다.. 라는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죠.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뜨거운 수요로 인해 물가가 여전히 높은 겁니다. 호주의 내수가 강한 만큼.. 이건 더 이상 외부 요인이 아니라 호주 국내 요인이 되는 것이죠. 그럼 수요를 식히기 위해 호주중앙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 카드를 던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네… 호주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상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네요… 그리고 아웃 오브 안중이실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기사도 주목해보시죠.
“주요국과 달리 북유럽, 튀르케예는 금리 인상 가능성 여전”
“주요 10개국(G10) 중 처음으로 2021년 9월 금리 인상에 들어간 노르웨이는 다음 달 14일에 금리 인상을 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물가 인상과 임금 상승 가능성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최근 근원 인플레이션이 다시 오르고 있는 처지다.
북유럽 국가들은 특히 외환 압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끊임없는 크로나화 약세로 인해 인플레이션 억제 노력이 타격을 받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도 최근 소비자 물가 데이터와 함께 크로네화 약세에 따라, 일부 이코노미스트가 금리 전망을 동결에서 인상으로 바꾸기도 했다.”(연합뉴스, 23. 11. 20일부 발췌)
네. 북유럽이라 함은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들어가죠. 지난 주 스웨덴은 기준금리를 동결했습니다만 추가 인상의 가능성을 열어두었구요, 다음 달 14일 노르웨이는 추가 금리 인상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죠. 북유럽 국가들 통화가 약세인지라..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높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튀르키예는 지난 주 금리를 대폭 인상하면서 꺾이지 않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죠. 이젠 외곽 국가들까지 끌어와서 겁을 주나.. 이런 반감이 드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약간 이런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때가 있죠.. 지난 6월입니다. SVB사태가 터진 이후 사실 상 금리 인상은 끝났다.. 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요… 이 때부터 변화의 시그널이 나타났죠. 4.0%에서 금리 인상은 끝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ECB는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섰고 노르웨이와 튀르키예 등이 추가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연준 역시 7월 추가 인상을 했던 기억이 있죠. 당시 기사 인용합니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이 22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 금리를 0.5% 포인트(p) 인상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을 웃도는 것이며, 은행 측은 오는 8월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중략)”(뉴스1, 23. 6. 22)
“튀르키예, 금리 8.5 -> 15%로 6.5%p 대폭 인상.. 2년 3개월만”(뉴시스, 23. 6. 22)
6월 후반부부터 물가에 대한 뷰가 글로벌리 조금씩 바뀌면서 재차 인플레 압력이 높아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할 때인지… 보다 신중하게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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