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님글 ㅣ 최근 미국에서 제2 플라자 합의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죠.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번 주말에 다루어볼까 했는데요…
전초전으로 최근 미국 국채 시장과 관련한 각국 통화정책 흐름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진행하는 게 더 나을 듯 하여.. 조금만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이 얘기는 해드려야겠죠. 과거 역사를 통해 보면… 미국의 재정 및 무역 적자가 심각해지면… 보통 다른 국가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을 통해 이런 빚의 문제를 해결한 반면, 미국은 룰을 바꾸어서 해결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싶은데 이제부터는 수출로 성장하겠음. 그럼 지금까지 우리에게 물건 많이 팔던 너희들이 사줄 차례임…’ 이런 식인 거죠. 그럼 반대편 국가는 미국 물건을 사주기 위해 내수 소비를 키워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버블이 생겨나게 되죠. 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를 일본 버블의 형성의 기원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미국이 재정 적자가 조금 늘었다고 이렇게 나오지는 않죠.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저렇게 룰을 바꾸곤 합니다. 그 얘기는 아직 미국이 룰을 바꾸기를 고민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인가요? 미국의 재정 적자는 계속해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죠. 얼마 전 미국 재무장관인 옐런 역시 지금의 미국 재정 적자가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경기가 좋을 때에도 무역 적자가 늘어난다는 것인데요… 보통 성장세가 강할 때에는 세수를 늘리고 지출을 줄여서 재정 흑자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면서 향후 다가올 수 있는 경기 침체를 대비하곤 하죠. 그래서 침체 시기에는 지출이 늘어나게 되니, 침체기에는 재정 적자가, 호황기에는 흑자가 늘어나곤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경제가 매우 강한데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가 크게 나고 있죠.
적자가 큰 만큼 빚도 많아지고, 고금리와 맞물려서 이자 부담 역시 크게 늘어난 상황입니다. 천조국이라고 불리우는 미국이 국방비보다 국채에 대한 이자를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자 부담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하는데요, 고금리가 장기화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런 미국의 재정 적자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고, 이를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더욱 늘려야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실제 미국의 국채 발행은 큰 폭 늘어나있습니다.
국채의 발행, 즉 국채 공급이 늘어났다면 이걸 소화해줄 수 있는 국채 수요가 존재해야 하겠죠. 미국 국채 수요의 대표자가 바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입니다. 양적완화를 통해 미 국채를 사줘야 하는데, 지금 연준이 양적완화를 할 분위기는 아닌 듯 합니다. 다만 후달림을 줄이기 위해 지난 5월 FOMC에서 QT를 조금 줄여주었죠. 그리고 미국 재무부가 살짝 바이백을 해주는 꼼수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연준 이외에도 시중은행이 미국 국채를 사들이곤 합니다. 그런데요, 예금이 많이 들어와서리 그걸로 국채를 잔뜩 사들였던 미국 시중 은행 중 SVB라는 은행이 무너집니다. 그러면서 미국 시중은행들의 미국 국채 수요가 과거보다는 다소 시들해졌다고 하죠. 그럼 미국 국채 발행은 크게 늘어나는데, 이걸 소화해주는 연준과 미국 시중은행 모두가 약해진 겁니다. 아.. 그럼 누가 사줄까요..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흑기사가 바로 해외 중앙은행이죠. 해외 중앙은행이 미 국채를 투자하는 이유가 뭘까… 결국 달러 강세와 고금리 때문 아닐까요? 애니웨이… 해외 중앙은행 중에 미국채를 많이 사들이는 곳은 중국과 일본 중앙은행입니다. 헉… 그런데 이미 느낌이 오셨을 텐데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최근 분위기는 어떨까요? 기사 인용합니다.
“中, 미국채 보유량 또 줄여…’몇 달 내 영국이 2위 보유국’”(연합뉴스, 24. 4. 18)
세계 1위 미 국채 보유국 중국이라는 얘기가 엊그제 같은데요, 이미 일본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중국은 미 국채를 줄이고 있기에 머지않아 2위 자리 역시 영국에 넘겨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간단 질문이 나오죠. 왜 중국은 미국 국채 비중을 줄이려고 할까요? 관세 때리고 기술로 묶어버리니까 빡쳐서…. 라는 답이 가장 많이 나올 듯 합니다. 당연히 맞는 얘기인데요… 그 외에도 고민할 부분이 있습니다.
2년 전 러-우 전쟁 발생 직후 미국은 러시아가 보유한 미 국채를 동결해버렸죠. 전범국 러시아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사들인 미 국채에 대한 상환 의무를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미국에 보유한 달러 표시 자산들을 동결해버렸죠. 그냥 압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3000억 달러가 넘는 러시아의 자산이 압류되는 것을 보면서 중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혹여나 미국과의 사이가 벌어졌을 때… 중국의 대미 자산이 동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요? 몇 일 전 나온 중국 인민대 교수의 코멘트는 이런 상황과 맞닿아있습니다. 타이틀만 인용합니다.
“中 인민대 교수 ‘안보 수호에 방해… 美 국채 보유량 줄여야”(연합뉴스, 24. 4. 30)
안보의 이유도 있겠지만 이유는 더 있을 듯 합니다. 중국 위안화 역시 달러 강세로 인해 상당히 고전하고 있죠. 얼마 전 달러 당 7.3위안이 털리면서 위안화 절하 압력이 강해지자 중국 당국이 외환 시장에 개입하면서 환율을 밑으로 찍어버리는 일이 벌어졌죠. 당시 원달러 환율도 일시적으로 1400원을 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달러 강세 국면에서 외환 시장 개입을 하려면 누군가 달러를 팔면서 반대편에서 플레이를 해줘야 합니다. 달러를 사들이는 투기 세력에 맞서서 달러를 마구 매도를 해줘야 하는 건데요… 각국 중앙은행이 달러를 팔면서 대응을 해야하겠죠. 중국은 외환 보유고 상에 있는 미국 국채를 매도해서 달러를 확보한 후, 이 달러를 외환 시장 개입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절대량이 크지는 않지만 미 국채 보유를 줄이기 위한 핑계로 위안화 약세를 제어하기 위한 외환 시장 개입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도 있겠죠. 미국 입장에서는 이런 명분도 그리 반갑지 않을 겁니다.
통화 약세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 시장에 개입한다… 어떤 다른 국가가 떠오르지 않나요? 아마도 일본이 떠오르실 겁니다. 달러 당 160엔 수준에서 강한 개입이 들어오면서 현재 달러 당 155엔 밑으로 환율을 찍어버렸죠. 규모는 추산되지 않지만 160엔 수준에서 강한 대응이 나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외환 당국은 미국 국채를 팔아서 달러 현찰을 확보한 이후, 이 달러 현찰을 필요할 때 환율 방어를 위해서 던질 수 있겠죠. 그래서인지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보시죠.
“외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에 보관 중인 미 국채를 매각한 뒤 이 자금 중 일부를 다시 연준에 예치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화 강세에 대응하기 위한 '실탄' 확보 차원이라는 추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일본은행(BOJ)이 핵심 배후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연준에 따르면, 외국 중앙은행들의 미 국채 수탁(custody) 잔액은 지난 15일 기준으로 2조9천314억달러로 집계됐다. 전주대비 약 191억달러 줄어든 것으로, 두 달만의 최저치다.”(연합인포맥스, 24. 5. 17)
첫 문단을 보시면 외국 중앙은행 중에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미 국채를 매각한 다음에 연준의 역레포 계정(언제든 출금이 가능)에 박아두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추측일 뿐이지만 일본은행이 그 핵심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나오죠. 환율 방어를 위한 달러 현찰 실탄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추측입니다. 일본이 엔 약세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미국 국채를 매도해서, 달러 현찰을 갖고 있어야 하겠죠. 다른 어떤 표현보다 중요한 건 “미국 국채를 매도해서”라는 겁니다. 미국이 그닥 듣고 싶어하지 않는 얘기죠. 일본은 미국의 우방국이죠. 엔화 방어를 위해 미 국채 매도해서 환율 방어를 하는 것을 용인하다면… 중국 역시 용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중국도 환율 방어를 명분으로 해서 미 국채를 상당히 빠르게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옐런 재무장관이 이런 발언을 합니다.
“옐런 美 재무장관 ‘엔화, 달러 당 155엔 넘었지만 日 정부 개입은 NO”(글로벌이코노믹, 24. 4. 26)
네. 일본한테 말하는 거죠. 외환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구요.. 이게 참 독특했던 것이 저 기사가 발표되기 불과 1~2주 전에 한미일 시장 개입 공조 기사가 발표되면서 달러원 환율이 1400원에서 수직으로 하락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몇 일만에 뒤집다시피 한 것인데요… 개입을 허용했었을 때 해외 중앙은행 발 미국 국채 수요 감소에 대한 고민을 한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되면 엔 약세를 제어하기 위한 일본의 고심이 깊어집니다. 환율 방어를 할 수 없다면 실제 엔 약세를 막기 위해 금리를 조절할 수 밖에 없죠. 미국과의 금리차를 좁혀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이 금리를 인하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망할… 고금리 장기화라고 해요.. 이게 맞다면 일본은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럴 때에는 일본이 금리 인상을 할 수 밖에 없죠. 그럼 일본 경제에 부담이 커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일본은행은 엔화 환율을 타게팅하지 않는다는 얘기로 일관하던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가 엔화 환율의 변화가 물가를 건드리면 금리를 움직일 수도 있다.. 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일본의 금리 인상이 현재 시장의 예상보다는 조금 더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과 중국 얘기를 해봤는데요, 그럼 유럽은 어떨까요? 유로존은 6월 금리 인하의 군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럽과 미국의 금리차가 벌어지면서 유로화가 추가 약세를 보일 수 있죠. 급격한 유로 약세를 막기 위해서는 ECB의 외환 시장 개입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중국과 일본도 외환 시장 개입이 제한된다면 유럽 역시 불편하겠죠. 그럼 유럽과 미국의 금리차가 크게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럼 유로존의 금리 인하를… 기존에 생각했던 것처럼 마구잡이로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천천히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獨 국채 수익률 급등.. ECB, 6~7월 ‘연속 인하’에 선긋기”(연합인포맥스, 24. 5. 18)
“’매파’ ECB 슈나벨 이사 ‘6월 금리 인하 유효… 이후에는 신중”(연합인포맥스, 24. 5. 17)
원래는 6월 금리 인하 이후에 ECB가 연내 4차례 인하를 할 것이라는 시장 전망이 우세했는데요, 최근에는 그 속도가 다소 느려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입니다. 유로존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의 빠른 금리 인하가 제한될 수 있죠. 금리 인하가 빠를 것으로 보였지만, 그 속도가 예상보다 느릴 것이라는 전망에 독일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는 기사가 첫번째에 나옵니다.
미국 국채 수요의 입장에서, 각국 통화 정책 및 환율의 흐름을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각국의 환율이나 통화정책이 무조건 미국 국채 사들이기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가 줄 수 있는 부담감이 단순히 미국 한 곳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이런 형식의 파장으로 현상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죠. 주말 에세이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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