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님 시황글 ㅣ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안티 컨센서스였죠. 무언가 마켓에 대한 컨센서스가 생기면.. 그런 확신이 들면… 바로 그와는 반대 흐름이 나타나는 겁니다. 컨센서스가 만들어지면 되려 시장이 반대로 가는 현상… 그냥 저는 안티 컨센서스(Anti Consensus)라는 콩글리쉬로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연초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지배적이었죠. 지난 해 2~3분기 미국의 GDP성장률은 실제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겪으면서 기술적인 침체의 영역에 접어들었고, 러-우 전쟁으로 인해 물가 역시 잡힐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았기에 고금리, 고물가, 강달러가 이어지면서 실물 경기 침체는 정해진 미래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주었죠. 그렇지만 이런 하나의 컨센서스가 만들어진 이후 그와는 반대 흐름이 나타났죠. 피벗에 대한 기대가 살아나면서 금리는 큰 폭으로 하락했고, 달러도 약세를 보였으며, 주식 시장은 어마무시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컨센서스가 사실 상 기정사실화되었던 것이 올해 3월 SVB파산 당시였습니다. 은행의 파산으로 인해 은행의 대출 공급이 위축되기에… 중앙은행마저 긴축을 하게 되면 더블 긴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초유의 은행 파산은 경기 침체에 쐐기골을 넣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고, 이에 대응해서 연준은 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은 많아야 3월까지 이어지고… 이후 동결한 다음 올해 9월 혹은 4분기에는 금리 인하에 돌입할 수 밖에 없다.. 내년까지 200bp인하해서 3%대 초반으로 금리는 내려올 것이라는 게 중론이 됩니다. 그리고 미국 10년 국채 금리는 3.3%까지 주저앉았죠. 금리의 추가 하락.. 그리고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가 하나의 컨센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컨센은 오래 가지 못했죠.
분기점은 올해 6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6월 말 미국의 부채 한도 협상이 끝나면서 미국 재무부의 국채 공급이 늘기 시작했죠. 그리고 올해 5월을 거쳐오면서 상승세로 전환한 국제 유가는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한 기대를 머금고 배럴 당 65불 수준으로 바닥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초반에는 의외의 유가 강세에 발맞추어 국채 금리가 상승하다가 말씀드렸던 6월의 부채 한도 협상 이후 7월이 넘어서자 강한 저항선 중 하나였던 10년물 기준 3.8%를 넘어서면서 큰 폭 상승세를 나타냈죠.
어어어.. 하다보니.. 8월 초 예상 외로 크게 늘어난 미국 국채 발행과 신용등급 강등, 3분기 강한 성장에 힘입은 FOMC의 성장 전망, 강한 고용 지표 등의 콤보를 연달아 맞으면서 계속 하락할 줄 알았던 국채 금리는 큰 폭 상승, 10년 기준 5%를 장중에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국제 유가 역시 10월 초 배럴 당 95불까지 오르면서 100불 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죠. 네.. 하나의 컨센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컨센은 오래가지 못했죠. 11월 들어와서 대반전이 시작됩니다. 예정된 국채 발행량이 감소까지는 아니지만 부담스러운 장기보다는 단기에 집중시키면서 미국 재무부의 시장 안정 의지를 보여주었고, FOMC에서는 점도표 등을 언급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신중론을 시장에 설파했습니다. 이후 발표된 10월 고용은 큰 폭 둔화하면서 성장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흘러나오게 되었구요, 10월 CPI는 거의 쐐기골을 박아주었죠. 시장에서는 이번 주에 발표될 PCE에도 주목하고 있죠. 그러면서 국채 금리는 현재 4.4%밑으로 밀려내려갔습니다. 금리의 추가 상승에 대한 컨센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고점으로 만들어버렸죠.
그리고 국제 유가 역시 배럴 당 95불 수준을 고점으로 해서 큰 폭하락하면서 현재는 배럴 당 75불을 살짝 하회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인 원자재 투자가.. 인플레이션 기대가 사라지면서 보다 큰 타격을 받는 것이 1번인 것으로 보이구요,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OPEC+의 통제력 약화가 큰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가라는 것이 올라가면 공급이 늘어나고.. 내려오면 공급이 줄어들고 수요가 늘어나곤 하죠(너무 당연한 것인가요).. 유가 상승이 나타나자 브라질의 해상 유전부터 시작해서, 그 동안 잠들어있던 셰일 오일 생산 의지가 강해지고 있죠. 미국 셰브론과 엑슨모빌은 새로운 셰일 오일 회사를 인수하면서 원유 설비 증산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낮아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높은 유가에… 그 동안 팔지 못했던 원유를 팔고자 하는 아프리카 산유국들의 속내 역시 OPEC+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소재가 될 수 있죠. 유가 역시 100불이라는 새로운 컨센이 만들어지자마자 한 대 얼얼하게 얻어맞은 분위기입니다.
금리와 유가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건 아니죠. 환율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달러원 환율은 정말 현기증날 정도로 흔들렸죠. 연초 1215원까지 밀렸던 환율이 한 순간에 반등하면서 1360원을 찍고… 그 다음에 주저앉고 반등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에는 1300원을 훌쩍 넘으면서 H4L에 발맞추며 고환율 장기화 우려를 키웠죠. 그러나 지난 11월 이후의 연준 피벗 훈풍을 맞으면서 재차 1280원대까지 밀려내려오는 등 무언가 컨센이 만들어진 이후 빠른 변화를 보였습니다.
안티 컨센서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쏠림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상당히 많은 유동성이 뉴스에 반응하고 있죠. 한쪽 방향의 뉴스가 나오면 그 방향으로 자금이 몰리고… 그런 자금의 쏠림이 과거보다 훨씬 강하기에 나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하게 됩니다. 그럼 보다 많은 쏠림.. 보다 빠른 쏠림을 만들어가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쏠림이 컨센으로 만들어지게 되면 어느 정도 강한 가격의 형성이 나타났을 것이고… 거기서 다른 누구보다도 발빠른 차익 실현이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쏠림이 워낙에 강한 시기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런 쏠림이 이어지면… 가격의 상승을 보면서 논리가 만들어지고, 그런 논리에 기반해서 컨센서스가 형성되죠. 이런 쏠림과 컨센서스를 조심해야 할 듯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의 극단적으로 쏠림이 나타난 것이 있는지를 면밀히 보시죠. 연말 뿐 아니라 내년에도 안티 컨센서스.. 주의해야 할 단어가 될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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